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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우리가 알아야 할 종교개혁 이야기

작성일 : 2021-11-17 14:55 수정일 : 2021-11-17 15:45

 

종교개혁의 중요성
1517년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은 기독교 세계만을 뒤바꾼 것이 아니라, 유럽의 정치와 권력의 지형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중세인들의 사고체계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고, 모든 것을 다 바꾸었습니다. 17세기 이후 유럽의 팽창이 시작되면서 세계의 역사 자체가 바뀌는데, 종교개혁은 이러한 세계사의 중요한 변곡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역사를 뒤바꾸어놓은 셈이지요.


종교개혁은 개신교를 세울 목적이 아니라, 타락한 중세교회의 잘못을 고치고 개혁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중세교회는 정치권력과의 유착, 성직자들의 타락, 즉 부의 축적과 문란한 사생활, 성직매매, 미신적인 종교 행위, 부자들의 사치와 향락, 가난한 자들의 비극적인 삶 등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신학만의 개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중세교회가 타락한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사제주의>입니다. 사제(司祭)란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 ‘제사를 맡은 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사제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이 이 일을 맡았지요.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심으로 제사는 완성되었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 없고. 제사가 필요 없으니 사제도 필요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속화되어가면서 제사장제도가 다시 등장하게 되었고, 이렇게 성직자와 평신도가 구분되면서 교회는 예수께서 의도하신 교회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성직자 그룹은 차츰 일반 성도보다 ‘거룩한 자’라 인식되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듯이 여겨졌습니다. 다시 구약으로 회귀한 것이지요.


이로 인해 나타난 심각한 잘못 가운데 하나가 <고해성사>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10장 19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피로 우리 각자가 성소에 들어갈 수있게 되었음에도 성모를 통해, 사제를 통해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비성경적이지요.


사제주의 회귀로 인해 <성찬>도 오해되었습니다. 원래 성찬은 예수님이 행하신 유월절 저녁 식사였습니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성찬을 제사 개념으로 이해하여 성찬식을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제사 행위로 변질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사제주의의 가장 큰 병폐는 <교황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교황을 정점으로, 대주교, 주교, 사제, 부사제 등 교회가 거대한 위계조직이 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종교조직을 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운동을 하셨는데 생명력 있는 운동이 다시 조직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개혁의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가 사제주의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 드는 것이 <만인제사장설> 혹은 <만인사제설>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영국국교회와 몇몇 루터교에는 남아있지만, 대부분 종교개혁자는 사제라는 말을 없앴습니다. 목사(牧師), 목회자는 사제가 아닙니다.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이며 말씀으로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목사와 평신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신분의 차이가 아니라, 기능의 차이입니다. 목자는 양 떼를 말씀과 사랑으로 돌보기 위해 특별히 부르심 받았습니다. 여기서 특별하다는 것은 ‘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따로 구별됐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건강합니다.



•면죄부(면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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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교회의 타락과 신학적 오류에 대하여 종교개혁자들이 들고일어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사제들은 베드로 대성당 건축 재정 모금을 구실로 면죄부를 판매합니다. 돈으로 용서를 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통용된 까닭은 그 시대 백성들이 무지몽매해서만은 아닙니다. 이런 개념이 신학화된 것은 <보상개념> 때문입니다.

면죄부는 현세나 연옥에서 받아야 할 벌을 면해주는 증서입니다. 현대의 가톨릭에도 대사(大赦)라는 개념으로 존재합니다. ‘대사’는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 따른 벌을 사면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가톨릭은 대사부를 돈으로 사고팔지는 않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으며, 고해성사 할 때 사제가 주는 보속(기도, 선행 등)을 통해 죄에 대한 보상이나 속죄를 합니다. 그러나 현세에서 완전한 속죄를 하지 못하여, 죄에 따른 벌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참회하고 속죄하며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를 다 마치지 못하면 죽은 다음에라도 정화의 과정[연옥]을 거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벌을 사면해 주는 것이 바로 대사입니다. 가톨릭은 죄와 벌을 구별합니다. 우리의 죄는 용서받았다 할지라도 그 죄로 인해 치러야 할 벌은 남아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을 남아 있는 벌, 잠벌이라고 하는데 현세나 연옥에서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잠벌을 해결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공로를 쌓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복음과 대척점에 있는 주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와 벌을 다 담당하셨는데 아직 해결하지 못한 벌이 있다는 주장이 가당합니까?

 


•공로에 의한 칭의사상
가톨릭은 복음과 함께 인간의 공로를 강조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우리 인간의 그 어떠한 공로도 거부했습니다. 그 어떤 공로로도 우리는 의롭다 할 수 없고 오직 십자가 은혜,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의롭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주의 유대인들을 질책한 이유, 바울 역시 지나칠 정도로 저항한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닙니까?

 


종교개혁의 선구자
이러한 잘못된 신학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1517년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건으로부터 개혁이 폭발된 것은 맞지만, 그 이전부터 개혁에 대한 작은 불꽃들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에 반기를 들고 개혁을 부르짖은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릅니다. 프로테스트는 ‘항의하다’, ‘이의를 제기하다’라는 뜻으로서 가톨릭의 칙령과 잘못된 교리들에 대하여 항의하고 저항한다는 의미입니다.


루터 이전에도 타락한 가톨릭에 대해 저항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습니다. 먼저 개혁의 불꽃을 피우다 순교한 개혁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을 소개하겠습니다.

 


•위클리프(John Wicliffe, 1320~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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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위클리프는 영국의 종교개혁가입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당시 프랑스 아비뇽에 있던 교황청이 영국에서 세금을 거두어 프랑스 왕가를 지원하는 등 교황청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진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위클리프는 교황청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와 교황의 절대 권위를 부정했고, 성직자든 평신도든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후에 마틴 루터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 어떤 성례보다 설교가 중요하다고 설파한 위클리프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 조직체계와 미사 행위들은 말씀으로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종교개혁의 모토인 ‘오직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위클리프의 업적은 성경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려준 것입니다. 그는 라틴어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하고 “모든 사람은 각자 스스로 성경을 탐구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혁명적이지요. 라틴어 성경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사에서 라틴어 성경을 신부가 낭독하면 일반 백성들은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연옥이든 면죄부든 그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급진적인 주장을 하던 위클리프와 그의 추종자는 정죄당하고 무섭게 박해받았습니다. 위클리프가 죽고 30년이 지난 1415년, 교황청은 콘스탄스공의회에서 그를 이단으로 선언한 후 부관참시, 즉 그의 시신을 파내 화형에 처하고 그 재를 강에 뿌렸지만, 날이 갈수록 늘어난 그의 개혁을 따르는 제자들은 1백여 년 후 영국의 개혁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얀 후스(Jan Hus 137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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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후스는 위클리프보다 한 세대 이후 사람입니다. 체코 프라하의 신학교수였던 그는 위클리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는 교황이 아닌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며,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며 성경이 모든 권위의 척도임을 이야기합니다.

체코의 후스파교회 마크는 십자가를 잔이 감싸고 있습니다. 교회 첨탑에 십자가와 함께 성배가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연유는 이렇습니다. 당시 가톨릭은 교인들에게 이종배찬 금지, 즉 떡만 주고 포도주는 주지 않았습니다. 1215년 라테란공의회 결정이었습니다. 개혁주의자인 후스가 보기에 이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종배찬 금지를 악하고 미친 짓이라고 혹평합니다. 실례로 얀 후스 순교 550년이 지난 1962년이 되어서야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평신도에게 잔을 주기로 했습니다.


얀 후스는 평신도에게 잔을 줄 것을 강하게 요청하다 교황청으로부터 파면당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이단으로 선고받게 됩니다. 아니, 성찬식이 그렇게도 중요한 예식인데,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신성한 예식인데, 왜 잔을 주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뒤에서 살피겠지만, 종교개혁의 가장 뜨거운 논쟁점이었던 성만찬에 대한 이해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화체설, 즉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고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합니다. 간혹 개신교인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이해하는 분이 계시지만 우리의 이해는 이와 다릅니다. 뒤에서 살피겠습니다.


얀 후스는 1415년 콘스탄스 공의회 결정으로 7월 6일 화형당합니다. 공의회가 출두를 요청했을 때 탈출하지 않고…. 얀 후스는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면 이단에게 규정된 형벌을 달게 받겠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공의회에 출두합니다. 화형당하면서 후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오늘 우리는 한 마리의 거위(Hus는 거위-goose를 뜻하는 체코어와 발음이 같습니다)를 불태우지만, 일백 년 후에는 백조 한 마리가 등장할 것이다.” 여기서 백조(swan)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루터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종교개혁이 무르익다가 루터가 등장하여 유럽 전체에 폭발적으로 개혁이 시작됩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회자되는 루터와 칼뱅, 그리고 쯔빙글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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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운 목사
고양·파주교구
전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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