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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작성일 : 2021-11-17 14:24

 

[ 갑바도기아·이고니온·다소 ]


자신을 복음의 빚진 자로 여겼던 사도 바울. 바울은 세 번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태양이 솟는 곳’이라는 뜻의 아나톨리아(Anatolia) 고원지대 험한 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거친 파도를 헤쳐 갑니다. 감옥에 갇히는 수난 속에서도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사도의 길을 충성스럽게 걸어간 바울은 기원후 67년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나오는 도시들은 바울의 행적과 더불어 복음의 확장 역사와 초대교회의 흔적들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성경과 종교개혁 도시 탐구」 시리즈 3편에서는 터키의 지하동굴 교회로 유명한 갑바도기아와 3차에 걸친 전도 여행 중에 바울이 매번 방문했던 이고니온, 바울의 고향 다소를 중심으로 그의 발자취를 찾아갑니다.


편집부


 

갑바도기아(Cappadocia)
 

 

갑바도기아는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동남쪽으로 약 320km 떨어진 위치에,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갑바도기아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 부활 이후 오순절 성령강림 때 사도들로부터 갑바도기아 방언으로 말씀을 듣는 장면이 2장 9~11절에 나옵니다. 또 베드로전서 1장 1~2절을 보면 베드로가 갑바도기아에 사는 성도들에게 직접 서신을 보낼 정도로 초대교회 역사에서 꽤 비중이 높은 지역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갑바도기아는 지형적으로는 약 일천만 년 전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와 용암이 해발 약 900m 높이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의 붉은색, 흰색, 주황색의 여러 겹의 지층으로 이루어진 아나톨리아고원 지역입니다. 화산폭발 때 분출된 용암과 화산재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응회암 지대의 사암층이 세월이 흐르면서 겨울에는 얼고 여름에는 녹으면서 바람과 물의 침식 작용으로 여러 가지 아름다운 기암괴석들로 장관을 이룹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피하고자 이러한 지형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에 인위적으로 지하 동굴을 추가로 파서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군대의 습격 소식이 전해지면 6개월 동안 먹을 음식을 지하에 저장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빛을 보지 못하고 견뎌낸 시간이 길다 보니 꼽추가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핍박을 피해 어둠의 동굴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신앙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약 39개의 지하 도시를 서로 연결하여, 한 곳이 점령당하면 지하의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는 비밀 통로를 만들었으며, 900m 높이의 고원지대의 춥고 긴 겨울을 지냈습니다. 한때는 1,000여 개의 지하교회에 200만 명이 살았다고도 전해졌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지하 도시들이 붕괴했습니다. 현재는 데린쿠유(Derinkuyu), 괴레메(Göreme), 카이마클리(Kaymakli) 세 지역만이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깊은 지하에 만들어진 곳으로 알려진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쿠유는 지하 120m 깊이에 18개 층으로 이루어졌으며, 약 2만 명의 성도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이지 않는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 괴레메 수도원은 갑바도기아 지역의 중심에 있습니다. 특이한 모양을 지닌 뾰족한 바위들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방과 부엌, 창고들로 구성된 꽤 넓은 동굴 교회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거주했던 수도사들이 바위 내부에 회벽을 바른 후, 예수님의 생애, 최후의 만찬, 십자가 고난, 부활 등을 그려서 굳힌 프레스코 벽화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6세기쯤 이슬람 왕국의 박해가 시작되자 또다시 이곳으로 피신하여 신앙을 지켰던 역사의 아픈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고니온(Iconium): 바울 전도 여행의 핵심 도시
 

 

‘양의 가슴’이란 뜻을 지닌 이고니온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와 지중해 연안의 중간에 있는 해발 1,000m의 고원 도시입니다. 오늘날에는 코냐(Konya)로 불리고 있으며, 인구 약 230만 명으로 터키에서 7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에베소에서 다소로 향하는 길목으로서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던 이고니온은 바울의 전도 여행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바울은 기원후 약 47~48년 1차 전도여행 중에 바나바와 더불어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고(사도행전 14:1~6), 50년경 2차 전도여행 중에는 실라와 더불어 이고니온을 방문합니다. 이때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는 장면에서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사도행전 16:2)라는 구절로 미루어 보면 디모데가 이고니온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추측되며, 3차 전도여행에도 디모데와 함께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한 이고니온은 안디옥교회로 유명한 수리아의 안디옥이 아닌 터키 비시디아의 안디옥과 루스드라, 더베와 더불어 로마제국 갈라디아 속주(屬州)의 핵심 도시였습니다. 우리에게는 〈갈라디아서〉로 친숙한 갈라디아(Galatia)라는 말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에 켈트족(Celts=Galli)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300년 동안 터키의 고대왕국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고니온은 13세기 중엽 몽골족의 침입으로 유적이 철저히 파괴되어 지금은 바울교회라고 불리는 테클라교회가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행적』이라는 기록에 의하면, 우연히 바울의 설교를 들은 테클라는 약혼한 남자와 파혼하고 바울을 따라 전도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이고니온 총독은 그녀가 괜한 소란을 일으킨다고 판단하여 그녀를 화형에 처하기로 한 후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으나 하늘에서 폭우가 내려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그 후 바울과 함께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고, 그곳에서 그녀에게 반한 어떤 귀족의 청혼을 받게 되지만 거절합니다. 화가 난 귀족은 그녀를 사자 우리에 집어넣었지만, 이번에도 사자가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살아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테클라를 기념하여 100여 년 전에 세운 교회가 테클라교회입니다.

 


다소(Tarsus): 사도 바울의 고향
 

 

바울은 신약 성경 27권 중 13권을 기록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입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 인류 역사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이방인의 전도자 바울에 의해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유럽과 서구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고향 땅을 밟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1장 39절에서 자신이 당시 로마제국의 속주 길리기아의 수도로서 인구 50만 명의 큰 도시인 다소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4~26절을 보면 바울은 기원후 34년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했으나, 바로 선교 사역을 시작하지 않고 바나바가 46년에 찾아와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사역할 것을 권유할 때까지 10년 이상을 고향인 다소에 머무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사도행전 15장 39~41절에서 2차 전도여행 중에 마가의 동행 여부를 두고, 바나바와 헤어져 실라와 더불어 다소를 거쳐 전도 여행지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소는 ‘폭풍의 신’이라는 뜻의 타르훈츠(Tarhunz)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지형적으로는 이스라엘에서 시리아를 지나 터키의 지중해 연안에서 내륙으로 약 20km 들어간 곳에 있는 길리기아 지역의 중심 도시입니다. 길리기아 지역은 곡창지대로서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였던 마르쿠스 키케로가 총독을 지내기도 한 곳입니다. 다소는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일찍부터 철학과 학문이 발달했고 이곳을 통해 헬라 문명이 활발하게 발달했으며 많은 철학자가 배출되기도 하여 소위 ‘소아시아의 아덴(아테네)’이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도심의 중심에는 타르수스 산맥에서 눈이 녹아내려 124km 길이의 강이 된 타르수스 강(시드너스 강이라고도 불림)이 지중해를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이 강에서 42살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로마 장군과 28살의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여왕이 화려한 배를 타고 만났다고 전해집니다.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 원정을 위해 현지의 물자지원이 필요했고,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가 죽은 후 로마제국의 실력자와 친분을 맺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부모가 이곳에서 천막을 만들어 팔았다고 전해지는데, 바울이 말하는 천막은 유목민이 사용하는 천막이 아니라 운동 경기 또는 축제 기간에 사용하는 공간이거나 군용 막사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천막 하나를 만드는데 70~80여 마리의 염소 가죽을 사용하여 2~3개월에 걸쳐서 여러 사람의 공동작업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천막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도시의 귀족 또는 군대 지휘관이었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다소의 주요 유적지로는 사도 바울의 고향 집 우물과 바울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바울의 생가 집터 가운데에 있는 우물은 도르래를 움직여 함석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립니다. 우물의 깊이는 약 38m로 지금도 당장 물을 길어 우물물을 맛볼 수 있으며, 뜰에는 집터 근처에서 발굴된 돌기둥과 비석이 전시되어 바울이 살던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1102년에 지어진 바울기념교회는 현존하는 바울교회 중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교회 내부 천장에는 예수,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그려진 프레스코 그림이 있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