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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2030 탈종교화의 원인과 대책

작성일 : 2021-11-17 12:19 수정일 : 2021-11-17 12:46

 

지난 호에 이어서 <2030 탈종교화 원인과 대책> 주제에 대해서 일종의 브레인 스토밍을 거쳐 의견을 모아 예배도 막히고 선교도 막힌 현 상황을 극복하는 작은 모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호는 시대적 흐름과 원인 중심이며 다음 호에 대책중심으로 진행합니다. 특히 젊은 층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상황 속에 의견의 순서는 없고 토론을 온라인이 아닌 지상중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재산세 등 세금내느라 힘들어 하는 가장들, 정규직 못되어 어려운 후배들 보며 그리고 코로나백신 후유증도 나타나 사회 전체가 침체되어 있는데 최근 드러난 부동산 폭등, 부동산 비리는 더욱 분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교가 더 필요한 시기는 분명하지만 어려운 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양지청 장로 이런 주제가 사실 매우 중요하고 단기 과제이기도 하지만 중장기 과제로 논리를 제공하며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종교화를 탈피해간다는 것인데, 학술적으로는 종교가 소멸되어가는 계몽주의 사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사회 여러 분야가 종교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데서 출발합니다. 제성호 장로님, 안창호 장로님 순서로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제성호 장로 탈종교화의 경향은 아마도 이 땅의 젊은이들 사이에 ‘절대적 진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들은 모든 가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에게 편한 것은 좋은 것이지만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나쁘다는 거죠. 그런데 기독교는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 “동성애는 죄니까 결코 용납해선 안 된다”라는 절대적 주장을 하고 있죠. 이런 성경적 진리가 2030의 많은 젊은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가치판단은 상대적이다”라는 명제 역시 절대적인 것 아닌가요. 논리적으로 볼 때 ‘절대 진리’는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오늘의 2030세대는 신이 없다, 구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처럼 불의와 악이 만연할 리 없다는 겁니다. 이런 연유로 그들은 세상을 불공정하게 내버려두는 신, 골치 아픈 영혼 구원의 문제엔 관심이 없고 편하고 즐거운 것만이 최고인 겁니다. 당장의 현세적 욕망 충족이 더욱 중요한 거죠. 이런 세속적·유물론적 사고가 탈종교화의 근본원인이라고 봅니다.

 


안창호 장로 저는 청년층의 탈 종교화와 관련해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동성애 인권 주장의 핵심에는 좌파 사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가정과 교회, 국가가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먼저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해체하고 국가를 전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동성애를 전면에 등장시켰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죽이기 위해 등장한 것이 동성애로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모든 과실을 임의로 따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선택 의지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물질적 평등을 추구하다 보면 자유를 말살합니다. 모택동, 스탈린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북한도 동일합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과 동향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양지청 장로 안창호 장로님께서 역사적 흐름까지 이야기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자가 동성애 옹호자, 지지자라는 소리도 나옵니다. 이 토론회를 위해 찾아보니, 종교가 있는 인구와 종교가 없는 인구(비종교인구)를 단순비교 할 때 무종교비율이 종교를 갖고 있다는 비율을 초과하기 시작한 것이 이미 2015년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교인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탈교회 현상이 심각하다”는 의견을 주신 분도 계십니다. 한편으로는 상품을 고르듯 자신의 구미에 맞는 예배와 설교와 영적,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회를 선택하여 소비한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인구 규모는 동일한데 이들이 한 곳에 몰리면 다른 곳이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이영종 기자 우리 교회가, 더 넓혀본다면 종교가 젊은 세대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MZ세대로 불리는 청년세대들의 경우 기성세대가 겪지 못했던 취업과 결혼, 출산·육아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정부나 사회제도 등이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아픔을 위무해주고 기운을 북돋아 줄 메시지와 정신적 에너지를 교회와 종교가 줄 수 있어야 하지만 그들의 눈높이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발길을 끊거나 새로운 유입을 어렵게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런 어려움은 교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으로 인한 풍요로움은 우리사회의 정치·경제적 계층화와 분열을 심화시켰고 결국 종교와 언론, 사회적·법적 제도와 규범마저 무시되고 비판받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혼란과 갈등, 파벌화의 길에 접어든 건 아마도 사회갈등의 조정과 화해 목소리를 내주시던 원로 목사님이나 추기경, 큰스님 등 종교적 어르신들의 권위마저 무너트리고 정파적 이해관계나 이익에 따라 비난을 가하면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제라도 젊은 세대들의 탈종교화에 대한 관심과 대책마련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교회의 르네상스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성호 장로 탈종교화의 바람은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소위 ‘가나안 교회(교회 ‘안나가’를 거꾸로 한 풍자적 용어)’의 증가가 대표적인 예죠. 이런 현상은 코로나 위기가 계속되면서 더욱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교회’를 외치는 사람들은 결국 교회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예배는 경건을 내포로 하는데, ‘나홀로 집에서’ 예배드릴 경우 마음과 뜻을 다하는 진정한 산제사를 드릴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문제는 교회를 다니다가 믿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가나안 교인들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도 ‘왕따’, ‘끼리끼리’ 혹은 ‘편가르기’ 풍조가 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가 가나안 교인들을 방관 내지 비판만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양지청 장로 종교개혁주일을 맞으면서 생각해봅니다. 종교개혁자인 개신교 그리스도인(Protestant)은 그 이름 안에 이미 저항(protest)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로 돌아가면, 높아지려고 하는 교회와 목회자, 즉 가톨릭 교회조직과 교황에게 저항(protest)한다는 의미가 컸겠지만 더 포괄적으로는 사회의 모순과 부정의에도 소리를 낸다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그러한 저항 정신이 탈종교화에 맞서 작용할 때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실제로 젊은 층을 접하시는 청년부 최재선 목사님, 교육부장 정천우 장로님, 대학부장 박일환 장로님과 편집위원장 차영수 집사, <만남> 청년편집위원으로 수고하시는 나광호, 이현지 성도도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최재선 목사 2030세대의 탈종교화에 대한 ‘외부적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사회 각층의 전문가 분들께서 보다 적절하게 다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로서 바라볼 때는 무엇보다 ‘내부적 요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비그리스도인은 물론, 기존의 기독청년들까지도 탈종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이러한 청년들의 탈종교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본질적 이유에 대해 ‘복음의 부재’를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통계들은 오랫동안 청년들의 기독교적 신앙이 단지 전통, 윤리, 도덕 그리고 문화적 함양 수준 정도에 방치되어 머물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살아 있는 진짜 복음’입니다. 이론이나 교리나 머리로, 지식적으로 아는 수준이 아닌, 실제로 체험하고, 경험하고, 누리고, 증거할 수 있는 복음의 실제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구원의 확신,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을 살아간다면, 어려운 외부 환경들이 다가오면 올수록, 더욱 더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이를 전달해줘야 합니다. 가정이 이를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목회자와 교사들이 이 일에 매진하고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정천우 장로 구한말 대한제국 기독교인들의 역할은 전체 인구의 1%에 지나지 않던 당시 기독교인들의 산술적 역량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3·1운동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 16인이 기독교인이었으니까요.


6·25 전쟁 후 핍절한 가난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한국인들은 기독교에서 희망을 보았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당시 염려했던 것은 외적 성장에 치우쳐 내적 치유능력을 상실한다면 세인들은 교회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최목사님 말씀처럼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기독교의 쇠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갤럽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기독교인은 인구대비 2014년 21%에서 2021년 17%로 떨어졌고, 20대와 30대 종교인 비율도 2014년 각각 31%와 38%에서 2021년 22%와 30%로 떨어졌습니다. 2021년 무종교인이 60%에 이른 상황에서 개신교에 대한 그들의 호감도가 6%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박일환 장로 얼마 전, 크리스천 동료 교수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가나안 교인이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글을 받았습니다. 눈물 흘리며 감동적으로 예배에 참여하여 은혜를 받았던 경험들은 이제 과거의 기억에 묻히고, 예배와 말씀 읽기와 기도는 더 이상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하는 매력 없는 것이 되었고, 인문학 독서모임에서 나누는 기쁨이 그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주었다는 요지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종교 생활에서도 뉴노멀의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삶의 품위를 높여주는 교양으로서,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 보이는 액세서리로서의 종교생활의 가치는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복음을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가치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종교인의 삶을 포기할 것인가 선택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우리의 마지막 사명은 가나안 교인이 되어가는 나의 이웃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를 진실 되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책임에서 실패한다면 다음 세대에서 기독교는 세상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주변으로 한없이 밀려 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차영수 집사 일제 강점기, 삼일절 독립운동 등에서 보여주었듯이 국가나 민족에 크나큰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기독교는 늘 의연히 일어나서 사회를 선도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기독교의 역할이 위축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이후에는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와 교회의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아 남은 자가 된 우리 모두가 지금의 이 상황을 자신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합니다.


교회와 성도 특히 다음 세대를 정성을 다해 섬기라고 하신 주님의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함으로써 기독교가 회복하고, 교회 뜰과 광장에 성도들이 빽빽이 가득한 그 날이 오기를 사모하며 기도합니다.

 


나광호 청년편집위원 1984년 이래 50% 안팎을 오가던 비종교인이 올해 60%로 늘어난 것에 대해 우선 지적할 것은, 종교에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5월 갤럽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종교인 중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비중이 1997년 26%에서 올해 54%로 2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 이나 일명 “나신교”(세상에 믿을 건 나 자신 뿐) 등 다른 응답을 합친 것보다 커졌습니다. 특히 20대(78%)와 30대(70%) 등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이같은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개신교에서는 믿음을 지닌 청년층의 비중이 장년층 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불교 및 천주교와도 다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개인 생활에서 중교의 중요도는 같은 기간 52%에서 38%로 축소되었지만, 이 부분에서도 개신교는 80~9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 신도들 자체의 문제보다, 비종교인들이 개신교를 너무 좋지 않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불교의 3분의 1, 천주교의 절반 수준입니다. 전도에 큰 어려움을 불러올 요소지요.

 


이현지 청년편집위원 10월 6일,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22년을 대표할 단어로 ‘나노사회(Nano Society)’를 꼽았습니다. 개인은 더 미세하게 쪼개지고, 사람들의 취향과 선택은 더욱 세분화되며, 공동체가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시대가 계속된다는 겁니다.


시대적 흐름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편승하는 청년들. 이들은 각자 자신이 찾은 가치관과 목표를 따라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다시 신앙의 길에 들어설 희망은 정말 없는 것일까요?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먼저 현시대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방점을 둔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나노사회 이면에는 ‘고독 사회’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2018년 2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0%가 “고독감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비대면 인간관계를 맺는 사회적 분위기가 원인이었습니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사회적 전염병으로 정의하고,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ry for Loneliness)을 임명해 전 국가적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올해 초 총리관저 내각관방에 ‘고립·고독 대책실’이 출범했습니다. 사회적 연결고리의 부재와 방임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방증합니다. 특히나 시대에 누구보다도 빠르게 적응하는 청년들의 경우 이러한 고독과 아픔을 더 크게 느낄 가능성은 다분합니다.

 


양지청 장로 ‘탈종교화’ ‘탈교회화’에 대한 여러분들의 분석과 처방 모두 감사합니다. 이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전 국민의 70%에 이르면서 우리는 ‘위드 코로나’ 사회로 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신후유증으로 어려움에 처한 분들도 많고, 지난 2년 간의 ‘거리두기’ ‘비대면’ 체제가 남긴 여운이 작지 않습니다. 대면예배가 회복되고, 믿음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대로, 젊은층들이 겪는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창호 장로 교회에서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우리역사에서 교회가 한 일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3.1운동은 기독교가 교회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교회가 3.1운동을 제대로 기록하고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좌파에 대항하는 세력은 유일하게 기독교입니다. 교회 핍박과 교회해체를 바라는 그룹이 존재합니다. 교단을 초월해서 기록하고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지방에 있는 교회까지 포괄하여 추진하여 책자로 하면 쉽게 만들어 배포하면 좋겠습니다.

 


제성호 장로 탈종교화의 광풍에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한국 교회가 ‘세례 요한’처럼 예언자 내지 선지자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현존하는 악과 불의와 불공정 등은 모두 인간의 죄성 때문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교회가 듣기 좋은 설교만 해선 안 됩니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도록, 메시지를 정교하게 잘 구성해야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맨투맨 전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와 성령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코로나 위기가 장기화하는 요즈음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언급하는 ‘믿음, 소망, 사랑’은 인간의 온전한 삶을 떠받치는 지주이자 기독교의 핵심가치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근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구원과 참 행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믿는 자들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연약한 영혼들에게 이 같은 복음의 진리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터인 한국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와 기독인들을 향한 주님의 요청이요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이영종 기자 우리 교회는 통일 대한민국의 발전과 정신적 행로를 결정하는데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명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청년세대들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가정과 사회생활의 지혜와 힘을 얻어가는 시간을 앞당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광호 청년편집위원 개신교가 확장성을 넓히기 위해서는 개별 교회 뿐 아니라 교계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된 부정부패 해소 뿐만 아니라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도 방편이 될 수 있겠습니다.

 


제성호 장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국 교회가 탈종교의 광풍을 극복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선 2030세대와의 관계에서 보다 나은 ‘소통’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교회 안에서 믿는 자들로부터 상처 받은 영혼들을 보듬어주고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합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낙오한 젊은이들, 여러 가지 이유로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소위 청년 루저(loser)들을 찾아내 상담하고 관리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소망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더불어 젊은이들에게 믿음의 여정에서 고난이 갖는 의미, 주님과의 동행이 가져오는 축복, 사명 발견의 중요성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소통의 방식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해야 합니다.


또 일찍부터 남을 괴롭히는 영적·정신적 가해는 매우 큰 죄악이고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입에 파숫군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품성과 덕성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게 가나안 교인을 막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교회에 사랑이 넘치면 누가 교회를 떠날까요.


비대면 시대에 맞게 온라인상으로 여러 가지 유익한 신학적 강의(신의 존재, 인간존재의 본질, 죄와 구원의 문제, 죽음의 문제 등)를 엄선해서 무료로 제공하는 방법도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교회가 자기 교회 목사님 설교 전파에만 관심을 가져선 안 됩니다. 이런 일에 돈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사회봉사요 선교 차원에서 젊은이들의 관심사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앞으로 한국 교회는 갈등과 분열의 사회 속에서 ‘책임있는 공동체적 역할’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양지청 장로 크리스찬들이 주예수를 믿고 목회자나 장로님이 주시는게 아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Salvation)을 기억하고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잘 이어가야 합니다.


사회적응도 잘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키워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