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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보성(保聖), 거룩함을 지켜가다

작성일 : 2021-11-17 10:25 수정일 : 2021-11-17 10:50

 

[ 개교 114주년을 맞은 보성학원 ]


보성여자중·고등학교는 불길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1907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위대모(Whittemore, Norman C. 1870~1952), 노세영(Ross, Cyril 1868~1963), 샤록스(Sharrocks, Alfred M. 1863~?) 등 미국 기독교 북장로회 선교사와 양전백1, 이성삼 등 선천의교계 지도자들이 발기하여 창립된 보성은 1907년 10월 10일, 교명을 <보성여학교>라 칭하고 선천읍 미동병원 부속 건물을 임시 교사로 개교했습니다. 초대 교장으로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최미례(Chase, Maria Louise 1869~1938) 여사가 취임했습니다.

 


보성여학교는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교육에도 굴하지 않고 성경수업과 예배를 수호해 왔습니다. 검박회(국산품 장려회)를 조직하여 일제 상품의 불매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검박회는 이후 선천 여자기독청년회(YWCA)로 발전되었으며, 독립투쟁 만세운동과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벌였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공산당의 탄압으로 보성여학교는 임시 폐교되었는데, 1950년 4월 서울에서 재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경직 목사님을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했습니다. 선천에서부터 한경직 목사님을 잘 알며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던 선천 보성여학교 졸업생 김성무2, 오순애는 당시 베다니전도교회(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영락교회 초창기 여전도회 활동은 선천 보성여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었습니다. 보성 재건 당시 영락교회 여전도회 회장 윤병주, 부회장 백운선, 서기 차윤신, 회계 정구한, 부회계 송낙결 등 대부분 임원이 선천 보성여학교 출신이었고 임원 명단에는 없지만, 이영철, 양애삼, 박경애, 고덕화 같은 졸업생이 영락교회 여전도회에서 활동했습니다.3

 


보성학원 재건 추진위원회의 노력으로 1950년에 영락교회에서 개교하여 수업 준비가 마무리될 즈음에 뜻밖에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부산 피난 학교를 경영하는 중에도 교사들과 학생들의 교육적 열망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수복과 정부 환도에 따라 1953년 9월 1일부터 보성은 영락교회 부속 건물을 임시 교사로 개교했습니다. 당시 영락교회 시무장로였던 제2대 교장 계병호는 영락교회 부속건물을 임시교사로 사용하는 것에 힘쓰는 등, 학교발전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54년 3월 20일 영락교회에서 보성여자중학교 제30회 졸업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듬해 1955년 4월 1일 보성은 해방촌(용산구 용산동 2가, 현 위치)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교기·교가·교표·교훈을 새롭게 제정했습니다. 특히 교훈은 거룩한 학교를 강조했던 초대 이사장 한경직 목사님의 뜻을 받들어 ‘진실·사랑·거룩’으로 정했습니다.


“우리 보성여자중·고등학교는 거룩한 학교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은 모든 속된 것의 반대입니다. 모든 부정한 것의 반대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보성여자중·고등학교는 모든 세속적 학교와는 다릅니다. 또 달라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보성인들은 세속을 좇는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합니다.”4


―한경직 목사님의 훈화 중에서


 

보성학원은 올해 개교 11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보성(保聖), 즉 거룩함을 지켜나가는 본교의 교육적 이념과 사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강한 도전과 장애 앞에서도 보성(保聖)의 뜻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활동이 제한되었지만, 학생들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고자 애쓰며, 대면예배와 실시간 온라인 예배, 수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을 선교의 걸림돌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말씀과 기도가 중심인 기본에 충실한 신앙교육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기독교적 덕목들을 삶에서 실천하도록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돕고 있습니다.


‘굿 뉴스 Good News(이사야 52:7)’라는 주제로 신앙부흥회를 개최하여 복음을 전하고, 말씀의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도록 도왔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학생들의 복음화 비율은 약 25~30% 정도 됩니다. 지난 9월에 있었던 세례식을 통해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특히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올해 세례식을 통해 복음화 비율이 50%로 상승했습니다. 팬데믹의 어려움 중에 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를 통해 보성의 가족들은 그 어떤 위협과 장애물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이 학원선교 현장에 있는 사역자의 기쁨이며 간증입니다. 더욱 애써 기도함으로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매일 아침 교직원들의 찬양과 기도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보성여자고등학교,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켜나가는 발걸음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최정민 목사
보성여자고등학교 교목










 

1 보성여학교의 설립자 중 하나인 양전백 목사(1869~1933)는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자로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3·1 운동 당시 33인 민족 대표로 참여했으며, 나라와 민족에 헌신하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2 선천 보성여학교 제2회 졸업생인 김성무(1891~1967)는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신의주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보성학원 재건 추진위원, 대한기독교 여성절제회 회장, 영락교회 여전도회 부회장, 여전도회연합회 총무, 영락유치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3 보성여자중고등학교(편), 『보성백년사』 (서울: 다락방, 2007), 182-183쪽.
 

4 『보성백년사』, 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