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말씀/칼럼

HOME > 말씀/칼럼

「202110」 빌립보, 아덴(아테네), 고린도

작성일 : 2021-10-09 11:58

[ 사도 바울의 2차 선교여행 ]


사도 바울은 1차 선교여행(소아시아지역, 구브로→버가→안디옥→이고니온→더베→앗달리아)을 무사히 마친 후에 형제들을 방문하기 위해(사도행전 15:36) 다시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합니다. 2차 선교여행은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를 든든히 하고자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간섭하시는 것을 느낀(사도행전 16:6~7) 그는 마게도냐 사람이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사도행전 16:9). 그는 하나님이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인정하고(사도행전 16:10),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써서 드디어 실라와 함께 유럽이 시작되는 마게도냐 지방 첫 도시인 빌립보에 도착합니다.

 

 


1. 빌립보
빌립보는 에게 해에서 내륙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게도냐의 도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인 빌립 2세(B.C. 359∼336)가 건설한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크레니데스였는데 주변에 있던 유명한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키고 도시를 확장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빌립의 도시라는 뜻)’라고 개명했습니다. B.C. 168년부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작은 로마’로 크게 발전했습니다.


빌립보 성(城)은 아시아와 로마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퇴역군인들이나 유대인들을 포함한 로마의 유공자들이 살았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대부분 사람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했다고 합니다. 로마지방 총독의 간섭 없이 자치적으로 행정을 꾸려갈 수 있는 행정특구 혜택을 받는 로마의 식민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원 후 49∼50년에 이 도시를 방문하여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우고 세례를 줌으로써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을 배출했습니다.


빌립보에서 ① 자색 옷감 장사를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를 만나고, ② 깊은 감옥의 간수와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고, ③ 상관(관원)들에게 자신이 로마 사람임을 밝힙니다.


(1) 루디아

 


‘마게도냐에 가서 도우라’라는 하나님의 환상을 받고 힘써서 빌립보에 도착한 후,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다가 문밖 강가로 나갔는데, 마침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들은 여자 중에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가 감동하여 복음을 받고 세례 받았습니다. 세례 받은 후, 루디아는 강권하여(사도행전 16:15) 사도 바울과 실라를 대접합니다. 강권한 것으로 보아 사도 바울은 자신이 묵을 숙소에 대한 걱정을 먼저 말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루디아의 초대에도 처음에는 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에서 시작된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첫날부터 끝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빌립보서 1:5, 4:15). 성령님께서 환상으로 그와 일행을 마게도냐 지방으로 인도하신 것은 이렇게 루디아처럼 돕는 사람을 준비하시고 또 그 만남을 통해 더 많은 사람, 유럽과 세계인의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됩니다.


(2) 구원받은 간수와 가족
사도 바울은 귀신 들린 자를 치료해 주었지만, 억울하게도 깊은 감옥에 갇힙니다. ‘귀신 들린 여종’을 수단으로 돈을 벌었던 주인들이 귀신 들린 여인이 고침 받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자 바울과 실라를 고발합니다.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유대인이다’, ‘빌립보 성을 요란하게 한다.’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라는 것이 고발 내용이었습니다.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고 매를 치며 발을 차꼬에 채워 깊은 감옥에 가둡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송하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의 문이 열리고 죄수의 차꼬가 풀어졌습니다. 잠에서 깬 간수가 열린 옥문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여 자결하려고 칼을 빼 들었을 때 바울이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몸을 상하지 말라’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때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간수와 그 가족의 구원이 바울의 억울함과 고통보다 더 크고 귀한 것이었습니다(사도행전 16:16∼34).


(3) 로마 시민 바울
날이 밝자 지난밤에 일어났던 사태를 파악한 상관들이 사도 바울과 실라를 석방하려고 할 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힙니다. 찢기고 매 맞고 차꼬에 묶여 깊은 감옥에 갇힐 때는 로마인이라고 말하지 않다가 사건이 마무리되고 떠날 때야 우대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로마 시민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루디아와 간수, 그리고 그 가족들이 있는 빌립보 교회를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루디아와 간수,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을 상관들이 건들지 못하도록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의 권리를 사용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를 나와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후에 유대인들에게 쫓기게 된 바울은 아덴(아테네)에 도착합니다.

 


2. 아덴(현재의 아테네)

 


아덴은 지금의 그리스 아티카반도 중앙, 사로니크만 연안의 도시로 그리스 여신 아테나(Athena)를 기념하기 위해 ‘아덴(아테네)’으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그림 2). 아덴은 서구 문명의 큰 축인 민주주의, 개인주의, 자연과학의 발달을 특징으로 하는 헬레니즘의 요람이 된 도시입니다. 당시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세계 3대 도시 중의 하나로서 정치의 중심지였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고향으로서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도성에 사는 사람보다 신상의 숫자가 더 많았을 정도로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① 격분했고, ②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다짐합니다.


(1) 바울의 격분
바울이 격분한 이유는 아덴성에 가득한 우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사도행전 17:16). 일찍이 예수님께서도 격분하셨습니다. 성전 안에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하셨습니다(마태복음 21:12∼15, 마가복음 11:15∼17, 누가복음 19:45∼46, 요한복음 2:13∼17).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화내신 진정한 이유를 좀 더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한복음 2:17).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너무 크기 때문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이 가득한 아덴을 보고 예수님이 화내셨던 것처럼 격분했던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사도 바울의 사랑과 열정이 나타나는 ‘격분’이었습니다.


(2)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바울은 날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아고라)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무신론자)와 스토아학파(범신론자) 철학자들과도 만났고, 종교와 교육 문제를 재판하고 토론하는 장소(아레오 바고)에도 초청받아 강연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최고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 중에 지식인이었습니다(사도행전 22:3). 아덴에서의 그의 연설과 대화는 체험적이었으며 정확한 논리로 구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예수님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합니다(고린도전서 2:1∼5). 그는 아덴에서 깊이 깨닫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3. 고린도
고린도는 아덴에서 60km 정도 거리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상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여서 헬라, 애굽, 시리아, 가나안, 아시아 출신 선원들이 체류하는 마치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민족이 세운 많은 신전이 모여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세운 이시스와 세라피스 신전, 에베소를 대표하는 아데미 신전, 수로보니게 사람이 세운 아스다롯 신전, 브루기아 사람들이 세운 마그나 마터 신전, 고린도 해협 북동쪽의 포세이돈(바다의 신) 신전, 고린도 광장 남쪽의 데메트(풍요의 여신) 신전, 광장 북서쪽에 있는 아폴로 신전, 그리고 1천여 명의 여자 사제가 있었다는 아프로디테 신전 등이 있습니다.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있었을 정도로의 수많은 인구와 화려한 문화, 엄청난 경제적 규모를 가진 부의 도시이자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① 동역자를 만나고 ② 주님의 환상을 다시 봅니다.


(1) 바울의 동역자들
고린도에서 바울은 생업이 같은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만나 함께 살며 천막을 만드는 일에 종사합니다. 그리고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유대인에게 강론했고, 나가서는 헬라인을 권면했습니다. 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 부터 내려오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그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증언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적할 때는 이방인인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묵었는데, 디도 유스도의 집은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모이는 회당 옆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회당장인 그리스보와 그리스보의 온 집안,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았습니다. 또 다른 회당장인 소스데네도 법정에서 유대인들에게 매 맞았지만, 후에 사도 바울과 함께 고린도 교회를 도와주는 형제가 됩니다(고린도전서 1:1).


이렇게 여러 동역자의 도움을 받아서 바울은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소아시아 북쪽 도시인 본도에서 태어나서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다가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 명령으로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유대인이자 로마인이었던 실라, 어머니 유니게와 할머니 로이스는 유대인이었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었던 디모데, 로마인(헬라인)으로 고린도에 있던 자신의 집을 집회의 장소로 내주어 바울의 복음 사역을 크게 도왔던 디도 유스도, 유대인의 회당 관리자 10명을 지도하고 감독했던 회당장 그리스보와 소스데네 등 바울을 도왔던 동역자들은 출신 성분과 지역, 교육 정도, 사회적 지위는 제각각이지만, 그들과 함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다는 진리를 전했습니다.


(2) 환상, 다시 나타나신 주님
고린도는 사도 바울에게 그 어떤 사역지보다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힘겨웠던 곳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2:3). 음란과 탐욕에 지배당한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를 가르쳐야 했고, 자신을 향한 성도들의 오해와 모욕을 견뎌야 했으며, 교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비방과 대적을 당해야 했고, 육체적인 질병과 약함 중에도 장막을 만드는 노동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사도행전 18:10). 환상을 통해 용기를 얻은 바울은 1년 6개월을 머물며 고린도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아가야의 법정으로 데리고 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총독 갈리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오히려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기까지 하셨습니다.


소아시아에서 유럽의 초입 도시인 빌립보로 이끄실 때도 환상을 보여주셨고, 고린도에서 힘들고 지칠 때도 환상으로 격려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동역자를 보내주시고, 환상으로 말씀 주셔서 믿음과 용기를 북돋워 주셨던 곳이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임대현 집사
성남·분당교구
홍보출판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