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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 대만선교, 가오슝한국교회 발자취

작성일 : 2021-10-08 09:18

 

대만의 공식 국명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다. 2021년 현재 인구는 약2,348만 명으로 한족(漢族)과 16개 고산족 원주민 부족으로 형성되어 있다. 대만을 ‘포모사’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1590년 유럽인 최초로 대만에 온 포르투갈 사람들이 초록으로 뒤덮인 섬을 보고 ‘Ilha Formosa’(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라 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섬 대만에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처음 새겨진 것은 조선 영조 때인 1729년 9월 12일, 말을 실은 배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대만 장화(彰化)현 얼린(二林)항에 정박한 때이다. 배는 다음 해에 조선으로 돌아갔으나, 그 후에도 간간이 표류하던 조선 배가 대만 여러 지역에 닻을 내렸다고 한다.

 


대만 선교의 씨앗을 뿌리다
한국인이 대만에 장기간 상주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전후이다. 기록에 의하면 1903년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한인의 직업 알선을 위해서 평북 의주출신이 대만으로 이주하여 선흥사(鮮興社)라는 인삼농장을 운영하면서 시작되었다(대만 한인100년사).


일본이 패망하고 광복 이후 대만에서 거주하던 수많은 한인이 조국으로 돌아갔으나 수송선의 부족 등 여러 사정으로 대만에 남은 600여 명의 한인은 지룽(基隆)항에 운집해 살았다. 그리움과 아픔, 희망도 없으나 그렇다고 절망할 수도 없는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은 중국 공산당에 패망한 장개석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천도하면서 함께 온 정성원(鄭盛元) 선교사에 의해서이다.


정성원 선교사는 1905년 8월 26일 평북 철산에서 태어나 평양의 숭의여자중학교와 평양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고 동평양교회 전도사로 시무했다. 1933년 3월 만주로 가 한인교회에서 봉사하던 그는 상해로 옮겨 사업과 전도에 힘쓰던 중에 대만으로 건너갔다. 타이베이(臺北)를 거쳐 지룽에 정착하여 복음을 전한 그의 첫 열매가 박성태 소년(후에 가오슝한국교회 1대 목사)이다.


1949년 11월 18일, 김회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 것을 계기로 지룽한국교회가 세워졌다. 정 선교사는 5년 후인 1955년 1월 2일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에 한국교회를 개척하고, 2년 후 1957년 5월 27일에는 타이베이(臺北) 한국교회를 개척했다. 그해 예장총회 전도사로 인준 받은 정 선교사는 1963년 예장통합 대만 선교사로 한국 교회의 대만선교 첫 번째 선교사가 되었다.


정성원 선교사는 이국땅에서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한인교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환자들을 돌보는 등 동분서주 복음을 전했다. 교민들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그를 ‘교포들의 어머니’로 인정하고 따랐다. 정 선교사는 이런 공로로 1963년 3.1 문화상과 해외교포 유공자상을 받았다.

 


가오슝한국교회가 시작되다
가오슝한국교회의 발자취를 살펴보려 한다. 1955년 1월 2일 지룽한국교회 정성원 선교사가 강을순 집사, 김회영 집사와 가오슝에 내려와 김갑유 자매 가정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가오슝한국교회가 시작되었다. 이후 여성 치과의사 박봉남 전도사를 목회자로 세우고 교민 가정을 순회하면서 주일예배를 드렸고, 현지교회인 가오슝구산(鼓山)장로교회를 빌어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가오슝한교(韓僑)학교(가오슝 한국국제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1962년에 타이난장로교신학원에 다니던 박성태 전도사가 담임목회자로 부임하여 졸업한 후, 1967년 8월 29일에 대만장로교 가오슝노회 집례로 목사안수를 받고 가오슝한국교회 1대 목사가 되었다. 1981년 10월까지 20년간 교포들의 삶을 돌보며 전도하는 한편, 교회를 중심으로 원주민 소수민족선교와 사회봉사사역(유치원, 공부방, 협동조합 등)으로 초교파 에큐메니컬 사역에 헌신했다.


현재 가오슝한국교회 예배당 건축을 한지 54년이 되어간다. 1967년 당시 예배처소가 없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예배드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대만 주재 한국대사였던 김신 대사가 대만 정부로부터 한국학교부지로 임대받은 현재 위치에 가오슝한국교회 예배당 건축이 되도록 도왔다. 한국 교민들의 삶을 위로, 격려하고 축복하며, 정신적 안정과 평안뿐 아니라 영적인 안식과 영원한 생명 등을 안위하는 곳이 되었다. 정성원 선교사를 통한 후원의 손길로 예배당을 완공하여 1968년 3월 31일 김신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헌당예배와 함께 교회 현판식을 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영락교회 후원으로 루카이어 성경번역 시작

 


가오슝한국교회에는 제2대 목사로 한덕성 목사가 영락교회 파송으로 1982년 2월 17일 부임하여 2005년 2월 20일 이임까지 23년간 교회와 원주민 선교사역을 했다. 한 목사의 선교사역 중 가장 손꼽히는 것은 원주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한 일을 들 수 있다. 1988년 3월 15일 영락교회 재정후원으로 원주민 아메이족(阿美族) 언어로 요한복음을 번역 출판했다. 이듬해인 1989년 12월 초, 한 목사는 대만장로교 파이완족(排灣族)노회 루카이(魯剴) 대리회(시찰)사무실에 방문하여 루카이어 신약성경 번역의 비전을 듣고 매주 성경 번역사역을 진행하는 루카이 대리회의 성경 번역부를 찾아 루카이성경 번역에 동참하게 되었다. 한 목사는 영락교회에 후원을 요청했고, 1989년부터 10년간 루카이어 성경번역을 목적으로 영락교회 해외선교 특별헌금에 의해 2001년 9월 8일 루카이어 신약성경을 대만성경공회에서 출판했다.


한덕성 선교사는 2003년 루카이어 구약성경 번역고문으로 정식 초대되어 2004년부터 루카이어 구약성경 번역을 시작했다. 2005년 정년을 맞아 가오슝한국교회를 은퇴하고 귀국한 뒤에도 루카이어 구약성경 번역에 혼신의 힘을 다하던 그는 2006년 2월 27일 현지에서 열린 성경번역 회의 참석 중 과로로 별세했다. 대만장로교 원주민 노회 루카이 대리회(현재 노회로 승격)는 원주민교회인 우타이(霧台) 교회에 루카이어 성경번역 공로기념비를 세우고 한 선교사를 기념하고 있다.

 


2017년 루카이어 성경 완역 29년간의 대역사 마무리

 


한덕성 선교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루카이 대리회는 한 선교사 부인인 김정애 사모를 구약성경 번역부 고문으로 초대했고, 2011년 3월 구약성경을 완역했다. 2017년 5월 루카이어 성경을 신구약 중국어와 루카이어 대조로 출간했으며, 그해 7월 11일에 29년간 제정을 포함해서 루카이어 성경번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후원하고 기도해 준 영락교회와 번역 작업을 한 루카이노회, 그리고 두 기관의 가교역할을 한 가오슝한국교회가 대만장로교 루카이노회 하오차(好茶)교회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출판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타이난 한국교회의 설립을 기도하며
2007년 2월 22일 제4대 목사로 필자가 부임하여 교회 목회에 중점을 두고 사역하고 있다. 가오슝한국교회가 한인교회임과 동시에 다문화적 교회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민감하게 응답하여,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사역을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 부탁드린다. 또 한 가지 소망은 유학 중에 국제결혼을 한 한인(韓人) 이민자들과 가족, 유학생, 여행객을 위한 한인교회를 대만의 옛 수도이며 현재 4대 도시인 타이난(台南)시에 개척하는 것이다. 타이난 한국교회 개척에 필요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드린다.

 

 

 

 

 

 

 


조병래 선교사
대만 가오슝한국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