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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 예수님의 활동 무대 예루살렘・나사렛・가버나움

작성일 : 2021-09-07 11:26 수정일 : 2021-09-07 13:11

지구 최대 화약고인 이스라엘의 도시 가운데, 예루살렘과 나사렛,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활동무대요 공생애의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2020년 9월 15일 미국 백악관에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은 2021년 1월 20일 임기를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도 예외적으로 계승하기로 하여, 코로나 이후에 이스라엘 성지답사가 수월해질 것이다.

 

 


[ 예루살렘 : 세계3대 종교의 성지 ]

 


예루살렘 제1의 기독교 성지는 갈보리산 골고다 언덕 위에 있는 성묘교회가 단연 으뜸이다. 성묘교회는 예루살렘 내부 서쪽 언덕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비아 돌로로사의 끝 쪽에 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처형당하였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힌 곳을 골고다(해골이라는 뜻)라고 표기를 하고 있으며, 이곳을 제1의 성지로 삼아 수많은 기독교인이 방문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객마다 이슬람 황금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황금돔과 황금문 사이에 성묘교회가 중앙에 위치하도록 사진의 각도를 절묘하게 맞추어서 찍을 수 있다.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은 예로부터 중동의 평화를 좌우할 만큼 분쟁이 많은 곳이다. 2021년 5월 7일에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수천 명과 이스라엘 경찰이 충돌했다. 이슬람에서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꼽히는 알아크사 모스크(사원)에는 라마단 마지막 주 금요일을 맞아 무슬림 7만여 명이 이슬람 시위에 참석했다.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벌어진 시위를 지지하여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레바논에서 하마스의 미사일 수천 발이 이스라엘을 포격했다. 다행히 11일 전투는 극적인 휴전 합의로 끝났다. 2017년 12월 6일에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대사관을 이전함으로써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한 국제적인 논란이 있었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시대에 언급된 살렘 지역이다(창세기 14:18; 시편 76:2). 후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는데(창세기 22:2; 역대하 3:1), 그곳이 바로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운 지점이다.


후대 사람들은 유대 산지에 있는 모리아 산을 ‘여호와의 산’(창세기 22:14)으로 불렀다. (참고, 시편 24:3; 이사야 2:3; 스가랴 8:3) 691년에 이슬람교는 모리아 산에 황금사원을 지었지만, 그 안에 있는 바위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장소이다. 예루살렘 성전이라 불리는 솔로몬의 성전은 지금도 그 잔해가 남아 있는 모리아 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최근에 그 아래, 정확하게 말하면 다윗성이 시작되는 정상 부근에 세워진 것이다. 모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보다’ 혹은 ‘준비하다’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그래서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이야기에는 이런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그 산의 이름이 ‘여호와 이레’(창세기 22:14)가 되기도 한다.


다윗 시대에 여부스족이 차지하던(여호수아 18:28; 역대상 11:4) 이름 없는 지역을 멸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것은 통일왕국의 다윗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통합하기 위해서였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편 122:6).”라는 말씀처럼, 다윗 이후에 예루살렘은 신구약 성경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다윗의 평생소원은 여호와의 전에 사는 것이다.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편 27:4).”라고 노래한다.


누가복음 9:51∼62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실 만큼,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시편 11:4) 여호와의 눈이 항상 머물러 있는 장소는 예루살렘이다.


2천 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채 살았던 유대인이 1948년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당시에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땅이었지만,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 이후에 빼앗은 곳으로 아직도 요르단 국적의 아랍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은 요르단과 이스라엘 이중국적자이기에 해마다 알렌비 다리를 건너서 두 나라를 자주 왕래한다.


유대교의 안식일은 제7일인 토요일이고 이슬람교의 안식일은 제6일인 금요일이지만, 기독교의 안식일은 제7일인 주일이다. 예루살렘을 가장 중요한 성지로 생각하면서 저마다 경배하지만, 메시아를 아직도 기다리는 유대인에게 이미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할 사명을 가진 기독교인이 예루살렘에 1만 5천 명 정도 살아가고 있다. 무함마드는 예수님을 자기의 발아래 내려놓고 비하하지만, 많은 선교사가 아랍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스가랴 14:4에 언급된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은 “메시아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구절처럼 메시아의 강림과 연결된다. 감람산 중앙 언덕 남쪽 끝에 동굴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자리이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예수님의 승천이 감람산 꼭대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며, 감람산 위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여(누가복음 24:50~51; 사도행전 1:9) 승천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신다는 것을 두려워한 이슬람은 승천교회의 천장을 돔으로 막았다. 이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인간이 제 소견대로 행한 것이다. 메시아가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에서 오신다는 것이 두려운 이슬람은 예루살렘 성벽의 출입문인 아치형 쌍둥이 황금문을 돌로 막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 나사렛 : 예수님의 고향 ]

 


나사렛은 갈릴리에 있는 성읍으로 요셉, 마리아, 예수님의 제2의 고향이다. 성가브리엘 교회 근처에 있는 샘물은 광장에 있는 ‘마리아의 우물’까지 흘러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마리아는 이 우물물을 길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1:26은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셨고 그길로 애굽에서 피난 생활을 했음에도 마리아가 예수님의 고향을 나사렛이라 했으며(마태복음 2:23), 제자들도 그렇게 불렀다(사도행전 24:5). 예수님께서 헤롯이 죽고 난 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유대에 남아 있던 아켈라우스의 공포정치 때문에 나사렛에 정착했다(마태복음 2:20~23).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두 사건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증거한다(누가복음 2:39, 51). 수태고지교회 주변의 주거단지 내에 있는 요셉의 목공소는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사렛의 낭떠러지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절벽이었던 남쪽과 서쪽으로 이어진 ‘낙하의 언덕’ 또는 ‘도약의 산’으로 불리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운 근처의 벼랑으로 고대에 회당이 있었던 곳이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에 대한 첫 배척이 있었다(누가복음 4:16~30). 나사렛에서 예수님에 대한 두 번째 배척(마태복음 13:57, 마가복음 6:16)은 예수님의 제2차 갈릴리 사역 중에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성경 읽으실 때 사람들이 다시 그를 대적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는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마가복음 6:4 이하)’라고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출신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에서 특기할만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할 때의 일이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여러 선지자가 말했던 메시아(신명기 18:15~18; 이사야 9, 11, 53장)가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해, 나사렛을 경멸 투로 말했다(요한복음 1:45~46). 이는 나사렛이 당시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으며, 좋지 않은 평판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마태복음 4:13과 누가복음 4:16의 공통 구절인Q(공관복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독일어 Quelle를 ‘자료’란 뜻으로 사용한다)에서 간략한 단어인 헬라어 ‘나자라’가 유일하게 사용된다. 이 ‘나자라’ 칭호는 예수님에게 붙여진 고유명사이다. 예수님의 지역적 특징을 나타내는 칭호로 그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히브리어로는 노쯔리, 마태복음 2:23; 누가복음 1:26; 2:39, 51)’이라고 부른 것과는 달리, Q는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스승을 ‘나자라 예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자라 예수님의 경우에는 나사렛 예수님과 전혀 다르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나자라’라는 칭호가 붙여져서 다른 나사렛 사람과는 엄격하게 구별된다. 오직 나자라 칭호만이 유일하게 예수님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다. 아직도 나사렛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랍인은 ‘나사렛 예수’를 경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구원의 희망이신 ‘나자라 예수’를 올바르게 전도해야 한다.

 


[ 가버나움 : 예수님의 갈릴리 선교본부 ]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선교 본부로서 3년 공생애 활동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이다. 마태복음 4:12~13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신 것을 기록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신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이루려 하심인데,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의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친 것과 같다.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가버나움을 ‘예수님의 고향’ 혹은 ‘예수님의 도시’라 부르고 있다(마태복음 9:1, 마가복음 2:1).


가버나움의 유적 가운데 아주 특이한 것이 법궤를 새긴 부조이다. 법궤 하면 네 명의 제사장이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을 상상하는데, 가버나움의 기둥에 새겨진 법궤는 네 개의 바퀴가 달려있어서 밀거나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회당의 문 옆의 은밀한 곳에서 만나를 넣은 항아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법궤 부조도 가버나움 회당에서 발견된 만나 항아리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회당의 강대상에서 예수님께서 설교하실 때 만나 항아리를 보시면서 생명의 떡에 관해 설교(요한복음 6:48~59)하신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가버나움의 정확한 위치는 지금까지도 믿을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텔훔이라는 곳을 가버나움의 최적지로 보고 있다. 이곳 폐허 중에 8각형 건물이 베드로의 가정집으로, 이곳에 세워진 교회의 유일한 유적이다(참고 마태복음 8:14~15, 마가복음 1:29~31, 누가복음 4:38~39). 그러나 이곳 유적 중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고대 회당 유적의 발굴이다.


가버나움에서 누가복음 7:5에 언급된 대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전도하실 때 사용하셨던 자리에 로마의 백부장이 세운 회당이 있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기적 이후에 위에 열거된 대로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고침을 받은 것을 중시할 때, 가버나움의 기적 이전과 이후가 극명하게 다르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유대인 선교에서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선회하셨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이전에는 유대인 선교에 치중하다가 이후에는 이방인 선교에 힘쓰신 것이다.

 


가버나움 위로 골란고원을 올라가는 산 중턱의 고라신은 모세의 자리가 있는 회당이 있던 곳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높은 곳에 앉지 말라’는 가르침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유적지이다. 모세의 자리는 고라신 회당 출입문 오른편에 놓여있는데, 회당 정면을 향하고 있다. 회당 안에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의자라서 순례 여행에서 지친 사람들이 서로 앉으려고 하는 곳이기도 하다. 왜 예수님께서 앉지 말라고 교훈하셨을까? 바리새인들의 교만을 드러내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라신 회당에 놓인 모세의 자리는 복제품이고, 원본은 예루살렘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고라신 회당의 모조품은 현무암인데, 예루살렘 박물관의 진품은 황톳빛 퇴적암이다. 아무것도 아닌 퇴적암 하나를 놓고 자리다툼하는 인생을 향해서 ‘교만의 상징인 모세의 자리를 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음성이 들린다.

 

 

 


소기천 교수
서대문·은평교구
장로회신학대학교
성서학연구원장·
성지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