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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 한국 교회음악의 아버지 박재훈 목사

작성일 : 2021-09-07 10:54 수정일 : 2021-09-07 11:21

 

‘교회음악의 살아있는 역사’, ‘한국 교회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재훈 목사님이 지난 8월 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대표적인 교회음악 작곡자이며 한국 교회 1호 지휘자라 할 수 있는 박재훈 목사님(1922~2021)은 생전에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뿐만 아니라 그의 신앙과 삶 자체를 통해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남겨주었다.

 


어린 시절 교회의 풍금으로 음악가의 꿈 키워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암울한 시기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가 청소를 했던 박재훈 목사님은 교회의 아름다운 풍금을 연습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훗날 그는 “라디오도 음악회도 없던 시절,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곳은 오직 교회뿐이었다. 3년 넘게 청소를 계속한 것은 성실했다기보다 예배당에 있던 오르간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라고 그 시절을 회고했다.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 대신 농사일을 도우며 3년간 학교 사환으로 일하던 그는 평양에서 목회하던 큰 형의 도움으로 문요한(John. Moore) 선교사가 세운 평양 요한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의 벗이자 훗날 자신과 함께 한국 교회음악의 개척자가 되는 장수철, 구두회 선생을 만난다. 이들은 함께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에서 수학했고, 동경 유학 시절 박 목사님은 최초의 4부 어린이 찬송가 ‘아기 예수’를 작곡했다(노랫말은 친구 구두회 선생). 태평양전쟁의 위협 속에 미처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그는 1943년 귀국 후 평양 근교 문동감리교회 부설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만난 전영택 목사의 찬송시 ‘어서 돌아오오’에 곡을 붙여 찬송가 527장을 작곡했다. 이 곡은 미국 장로교 찬송가와 연합감리교회 찬송가에도 수록될 정도로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찬송가와 성가곡, 동요 1,500여 곡 작곡, ‘어머님 은혜’ 등 국민동요 남겨
공산정권의 압제를 피해 월남한 박재훈 목사님은 1950년 한국전쟁 때 ‘한국교회음악협회’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 시기에 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를 작곡했는데, 여성 시인 석진영이 보낸 엽서의 시를 읽고 감동해 10분 만에 멜로디를 완성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1953년 한국전쟁 종전 이후 목사님은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우리에게 친숙한 동요들을 작곡했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펄펄 눈이 옵니다’, ‘산골짝에 다람쥐’, ‘숲속의 매미가 노래를 하면’, ‘시냇물은 졸졸졸졸’, ‘엄마 엄마 이리와’ 등 우리가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다수의 동요를 이 시기에 작곡했다. 특히 ‘높고 높은 하늘이라’로 시작하는 동요 ‘어머님 은혜’도 그가 작곡한 곡이다. 원래 찬송가로 작곡된 이 곡은 교과서에 실리면서 3절 가사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 어머님의 그 사랑 거룩한 사랑 //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 올리자 /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이 빠지고, 1∼2절만 불리면서 일반 동요가 되었다.


그가 작곡한 동요와 성가곡(‘주는 저 산 밑의 백합’,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 등)은 무려 1,500여 곡에 달한다. 또한, 그가 작곡한 ‘여름성경학교 교가’는 매년 여름방학이면 수만 교회의 여름성경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1950~60년대 영락교회 성가대 지휘 1970년대 이후 캐나다에서 목회와 창작 활동 전념

 

 

6·25전쟁 후 박재훈 목사님은 영락교회 성가대 지휘를 시작하며 한경직 목사님과 동역했다. 1959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1963년 귀국하여 영락교회 시온찬양대 지휘자로 복귀한 후 10년 이상 봉사했다. 영락교회 9회 시무장로였던 고인은 한양대 음대 교수를 지내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는데 2016년 별세한 박영근 장로님(베들레헴찬양대 창단 지휘자·한양대 음대학장 역임)도 그중 한 분이었다. 1963년에는 교회음악 전문출판사인 ‘교회음악사’를 설립했고, 1964년 전문 음악 잡지 『교회와 음악』을 창간했으며, 『성가 합창곡집』 시리즈를 출판했다. 또한 『개편 찬송가』 편집을 주도했고, 선명회(월드비전) 어린이합창단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197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음악위원장을 끝으로 이민 길에 오른 그는 1977년 캐나다에 정착한다. 1982년 60세의 나이에 미주한인장로회총회 캐나다노회에서 늦깎이 목사안수를 받은 후, 토론토 <큰빛장로교회>에서 8년간 담임목사로 시무했으며, 1989년 조기 은퇴하고 후임 임현수 목사가 목회하는 동안에도 7년간 찬양대를 지휘하며 겸손히 교회를 섬김으로써 후배 목회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그는 만년에 오페라 작곡에도 몰두했다. 1972년에 초연된 그의 첫 오페라 <에스더>는 성경 오페라의 시작이었다. 이후 민족 오페라이자 한국교회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담긴 <류관순>을 만들었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말년까지 오페라 <손양원>과 <함성 1919>를 작곡했다. 그 공로로 2011년 10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고, 제6회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에서 창작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신앙고백으로서 찬양의 절실함을 강조
 

 

박재훈 목사님은 약 800여 곡의 찬송을 작곡함으로써 우리나라 작곡가 중 가장 많은 찬송가를 남겼다. 우리 찬송가에는 그의 찬송이 아홉 곡이나 실려 있다. 17장(사랑의 하나님),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319장(말씀으로 이 세상을), 392장(주여 어린 사슴이), 515장(눈을 들어 하늘 보라), 527장(어서 돌아오오), 561장(예수님의 사랑은), 578장(언제나 바라봐도), 592장(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이다. 모두 유명한 곡이지만 그중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그의 대표적인 찬송가로 꼽힌다. 생전에 이 찬송에 대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매일매일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모습을 이 땅에서 닮아간다고 하는 것은 제힘으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라는 구절처럼 주의 은혜의 손길이 나를 잡아주실 때만 우리는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라고 회고했다.


1984년 한국 기독교 100주년을 맞아 ‘한국 기독교 100주년의 노래’를 작곡했던 박 목사님은 1995년 영락교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념 칸타타 ‘뿌리, 온 땅에 편만하라’를 작곡(작사 송성찬 장로)하여, 영락교회 연합찬양대원 400여 명을 지휘하며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연주했다. 이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연습 중 늦게 들어오던 젊은 대원 3명을 향해 “이제 들어오는 사람은 나가라” 하시며 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수백 명 앞에서 창피를 당한 그 대원들은 “나갈 거예요”하고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고 목사님은 분을 참지 못하셨다. 사실 이런 일은 목사님과 찬양대를 했던 사람들에게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목사님은 늘 “찬양 연습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시간으로, 예배 시간이나 다름없다. 이 연습에 늦게 오는 사람은 찬양할 자격이 없다”라며 찬양 연습과 시간 엄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마 박재훈 목사님 지휘를 경험했던 찬양대원들은 늦었을 때 연습실에 몰래 기어들어 갔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달려갈 길 완주한 주님의 종
최근 박재훈 목사님은 <성 요한 수난 음악>을 작곡하여 2022년 부활절에 갈보리찬양대가 연주하기를 의뢰했다. 또한, 이 곡의 작곡을 마치자마자 오페라 <이승만>을 써 내려가며 후손에게 바른 역사를 일깨워주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방에 알리려 했다. 고령에도 생애 마지막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던 고인을 임현수 목사는 이렇게 추모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처럼 목사님을 장수하게 하시면서 한국 음악의 원로, 한국 동요의 대부, 가장 많은 곡을 작곡한 찬송가 작곡가, 오페라 작곡가, 100년 교회 역사의 증인으로 남겨 놓으신 것이다.”


필자는 <성 요한 수난음악> 연주와 관련하여 고인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목사님의 말씀은 거의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자신의 곡을 설명해 주셨다. 필자가 못 알아듣겠다고 하면 손편지로 곡에 관한 이야기를 또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보내주시기도 했다. 이 곡을 영락교회에서 연주해 주면 좋겠고, 작품 일부분도 생략하는 일 없이 모두 연주해 달라는 그의 부탁을 주로 하셨다. 그러면서도 목사님은 “모든 것은 교회 사정에 따라 하십시오. 교회에서 정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시며 교회와 필자를 향한 배려의 마음을 늘 보여주셨다.


마음이 맑으셨고, 민족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셨던 박재훈 목사님을 하늘나라로 보낸 지금, 그분이 남긴 자리가 허전하지만, 천상에서 주님과 함께 아름다운 찬양을 들으며 편안히 쉬실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린다.

 


사진제공 역사자료실,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음악부

 

 

 

 

 


박신화 장로
마포·영등포교구
갈보리찬양대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