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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작성일 : 2021-09-06 16:11

 

[ 고(故) 정치근 은퇴장로를 회고하며 ]


원자폭탄 버섯구름 앞 젊은이
한 젊은이가 있었다.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장송동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제대를 다녔던 까닭에 조선특별지원병이라는 태평양전쟁 학생징용 대상이 된다. 용산역을 출발해 히로시마에 배치된다. 공습 첩보를 좇아 그와 일부 부대원은 급히 외곽으로 이동한다. 아침이 되었을 때 평소 듣지 못하던 ‘웅~’ 하는 굵은 저음 소리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생각 못 한 까마득한 고공에서 시내 상공으로 진입하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어느 순간, 비행편대가 갑자기 급선회하며 돌아 날았다. 1분쯤 지났을까 강한 섬광에 전혀 눈을 뜰 수 없었다. 감았던 눈 겨우 뜨니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이었다. 살아남은 군인들은 처참한 폐허 속에서 끝없이 시체를 치워야 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계
일본의 패전과 고국의 해방. 한반도 북녘은 공산주의 천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귀국 후 결혼한 그는 해방 이듬해 서울에 거주하는 삼촌, 소설가 정비석 선생을 찾아 가족과 함께 월남한다. 기습남침 6・25 전쟁이 끝나가던 1953년 1월, 병으로 두 딸을 잃는다. 어느 날 아내가 보니,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그는 갑자기 늙어 있었다. 서울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그는 수척하고 폐도 약했으며 자주 아팠다. 병가를 얻어 드러누웠던 그는 깊은 산 조용한 곳을 찾아 3일간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는다. 새벽 밝기 전 마지막 기도하던 그에게 갑자기 뜨거운 성령이 임한다. 온몸이 뜨거워져 눈물 콧물 대성통곡 땅을 치며 몇 시간을 부르짖는다. 먼 훗날 그는 회고한다. “성경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일이 내게도 있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경험
그는 평생 시간을 아끼며 살았다. ‘오늘이 내게 마지막 날일지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생활공간 여기저기에 시계가 여럿 있곤 했다. 절박한 순간을 타고 넘던 경험이 삶 속에 녹아 있었다. 어느덧 9월 9일이면 이 글의 주인공인 필자의 부친 정치근 은퇴장로가 하늘나라 가신 지 1년이 된다. 헬라인들은 흘러가는 일반적, 수평적 시간을 크로노스(ckronos)라 한다. 부친은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터지는 참혹한 폐허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것은 ‘죽음의 크로노스 경험’이었다. 헬라인들은 경험적, 수직적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 한다. 자식들을 한 번에 모두 잃은 뒤 몸까지 병들어 한계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 찾아 기도하던 중 성령을 체험한 것은 ‘생명의 카이로스 경험’이었다.

 


젊은 세대, 소명감으로 다가서다
참혹한 원자폭탄 투하 현장에서 살아난 그는 방사능 염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이 빨리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을 찾았다. 성령을 체험했다. 그것은 마음의 치유, 몸의 치료를 의미했다. 그는 새로운 소명감으로 젊은 세대에 다가서고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으며, 나중에 ‘젊은 날의 노트’라고 이름 바뀐, 『내가 만난 Y여고 임석영 선생』을 썼다. 학생 건강을 위해 『학생과 건강』을 썼다. 청소년들이 영어 잘하도록 영어책도 부지런히 썼다.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부친 모습을 설명할 단어는 소명감 외에는 없어 보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
성악가 고 오현명 선생이 불렀던 부친 작시(作詩) 노래에 ‘젊은 김삿갓, 늙은 김삿갓’이란 표현이 있다. 부친의 성령체험 전후의 삶을 생각하면 이 표현이 떠오르곤 한다. 그가 장로 은퇴하고 수년 후에 썼던 베다니광장 청동부조의 글은 영락교회 시작을 이렇게 표현한다.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하여….’ 부친 또한 고난을 피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그가 노랫말을 쓴 찬송가 473장이 떠오른다. ‘괴로움과 고통을 친히 당하신 예수님, 병든 몸과 이 마음 소망을 주옵소서. (중략) 쓰러지고 지칠 때 새 힘 주시는 예수님, 의지 약한 이 마음 붙들어 주옵소서. (후렴) 구주 예수 능력의 주 힘과 용기 주옵시고, 말씀으로 고치소서 깨끗하게 하옵소서.’ 그는 노년에 낙상사고로 고생하시다 백수에 이르러 하늘나라 가셨다. 부친 입원 중 가족이 가졌던 신앙 체험들은 하나님 인도하심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내려놓을 수가 없게 한다. 글 쓰는 이 순간 문득 시야가 눈물에 가리 운다.

 


성령 그 인도하심을 구하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소설가 톨스토이의 결론처럼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성령이 부친을 찾아오셨다. 그것은 위로부터 찾아온 사랑이었다. 부친의 삶을 이끈 것은 카이로스의 경험 곧 성령이었다. 우리는 보혜사 성령 그 인도하심을 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정천우 장로
강남교구
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