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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 진정한 광복을 위하여

작성일 : 2021-07-30 09:30 수정일 : 2021-07-30 13:43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4)


몸이 아픈 사람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회복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암을 앓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입원했다고 합시다. 이때 회복은 무엇일까요? 다리가 나아서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회복은 아닙니다. 그는 다리가 나아도 여전히 암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올해 8월 15일은 광복 7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광복’의 사전적 의미는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입니다.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에 일본에 강제 합병되었습니다. 경술국치라 부르기도 합니다.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는다는 차원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광복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광복일까요? 진정한 광복은 단순히 국권침탈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순히 일본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을 광복이라 한다면, 1910년 8월 29일 이전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가 회복된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아닙니다.


1910년 8월 29일 이전의 우리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고종은 기울어가는 조선을 쇄신하기 위해 나라의 체계를 새롭게 하고,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1897년 10월 12일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라 칭했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당파 갈등으로 인해 하나 되지 못했고, 발전동력을 잃어버린 나라는 모든 면에서 낙후되었습니다. 구미의 여러 나라가 산업혁명을 토대로 눈부신 발전을 이룰 때, 일본이 일찍 개국해서 서양 문물을 수입하여 나름대로 발전할 때도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모든 것이 누적되어 대한제국 시절의 우리는 너무도 연약하고 무기력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1910년 8월 29일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광복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1945년 8월 15일은 광복된 날이라기보다는 단지 일제의 손에서 해방된 날 일 뿐입니다.


진정한 광복이란 주권이 제대로 구현되어 백성이 행복하게 살만한 국력과 사회적 안정을 이룰 때, 또 이를 위해 백성을 교육하고, 백성이 올바른 애국과 선진 국민 의식을 갖추는 등 나라가 나라다울 때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76년이 지난 지금도 진정한 광복이 온전히 이루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
이런 의미에서 광복은 외부의 적을 향한 투쟁과는 다릅니다. 1945년 8월 15일까지는 광복을 위해 싸워야 할 적은 일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에는 누구와 싸워야 했을까요? 주권이 제대로 구현되고, 나라가 나라답고, 백성이 행복하게 살만한 국력과 사회적 안정을 이룰 때, 또 이를 위해 백성을 교육하고, 백성이 올바른 애국과 선진 국민 의식을 갖추는 것이 광복이라 한다면, 그 이후에는 그렇게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적입니다. 마치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가 회복된 후에는 암과 싸워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광복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궁극의 적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주권을 찾아도 구현하기 힘듭니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었지만 우리는 어렵게 되찾은 주권을 합당한 방법으로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해방 후 정국은 극도로 혼란했고 국토는 열강의 손에 의해 분단되어 6·25라는 참혹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주권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광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국민과 나라가 강건하지 않으니 주권을 회복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의 손에 휘둘리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온갖 죄악을 저지르는 우리는 사망의 고통 아래 눌리고,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해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광복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해진 사람이 다시 재물을 모으고, 병약한 사람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것과 같이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으로는 인생이 진정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을 구현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온전한 구원입니다.


본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중의 일부로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교회의 경우에는 다른 여러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까지는 온전한 회복이 아닙니다. 인생과 가정의 진정한 회복, 나라의 진정한 광복은 결국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회복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광복 운동은 골방에서 우리 자신이 성령님 안에서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은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광복절이 되면 행사장과 길거리에서 외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은 변화되지 않았고 그저 행사를 치렀을 뿐입니다. 행사 이전과 이후가 동일합니다. 그런 행사를 백 번 해도 참 광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분단된 나라가 복음으로 통일되고, 이 땅에 참 평화가 구축되어 백성이 복되게 살려면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우리 각자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