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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 나는 ‘자유인 연어’입니다

작성일 : 2021-06-02 08:49

 

할렐루야. 나의 시작과 끝이 되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1999년 대한민국에 온 탈북민입니다. 낯선 대한민국과 서울의 각박한 인심에 소스라치며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슬픔에 빠져있던 그 시절,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도 잠시, 쓰나미처럼 밀어닥치는 현실을 오롯이 감당하면서 너무 힘든 20대를 보냈습니다.


자정까지 도서관에서 전공 서적과 씨름하고 모자란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 강북으로 강남으로 아르바이트하러 뛰어다녔습니다. 부족한 영어를 배우러 첫 새벽 지하철을 탔던 시절에도 주일이면 꼬박꼬박 갔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영락교회였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피곤한 몸을 일으키며 교회에 가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서울을 가로지르는 지하철을 타고,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가끔은 을지로입구역을 지나치면서도 그렇게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북한에서 피난 오신 할아버지 세대가 서러운 마음들을 모아 세운 교회, 반세기 넘게 한자리에서 북한 땅을 위해 기도하는 영락교회 마당에 들어서면 근엄한 내 아버지의 모습 같은 예배당의 실루엣이 항상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탈북자들은 태어나서 자란 조국에서는 살수가 없어 제 발로 떠나온 서러운 사람들입니다.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사선을 넘는 탈북 과정에서 죽음의 공포와 구원의 기적 같은 극한의 심리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저희에게 하나님은 처음부터 믿을 수 있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왜 북한을 버리고 남한만 선택하셨나? 왜 2,500만 백성을 종으로 부리는 김 씨네가 대를 이어 잘 사는 것을 보고만 계신 걸까? 이런 마음을 품은 제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 저의 불편한 마음과 방황을 사랑과 기도로 변함없이 기다려주신 분들이 북한선교센터(현 북한선교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1999년에 설립되어, 초창기에는 달랑 여섯 명뿐이던 탈북민들을 위해 열 명도 넘는 교사님들로 꾸려진 북한선교센터는 50주년기념관 7층에서 항상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목사님과 여러 권사님, 그리고 집사님들께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특별히 학생 수보다 더 많았던 선생님들로 이루어진 북한선교센터에서 상처투성이인 마음을 위로받고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공부는 왜 그렇게 지루했던지, 예배가 시작되면 왜 그렇게 졸렸는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없습니다. 그런데도 거의 한 주도 빼먹지 않고 교회로 향했던 모든 발걸음과 시간은 바로 내주님의 은혜였고 축복이었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변함없이 기다려주신 주님의 사랑은 북한선교센터 선생님들을 통해 저에게 신앙의 자양분으로 흘러왔습니다.

 


영락교회 울타리에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정착 초기의 성장통을 잘 이겨낸 저는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으로 치열한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었고, 완벽한 신앙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적이요 은혜임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값없이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늦게나마 집사 교육도 받았으며 탈북민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을 상담하는 작은 봉사도 실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살리시려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내 주 예수님의 보혈로 나와 내 가족은 구원받았습니다. 삶을 통해 하나님의 완벽하신 계획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선교센터의 선생님들과 영락교회 교인들의 기도와 사랑, 헌신 속에서 북한선교센터는 이제 설립 22주년을 맞았습니다. 북한선교센터는 탈북민 예배와 신앙교육, 선교사양성과 미래의 통일 인재를 키우는 <뉴코리아국제학교>를 운영하는 등 많은 외연적 확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복음통일 사역의 장자교회로 영락교회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온전한 계획이요 은혜라고 믿습니다.


저처럼 영락교회 북한선교센터에서 주님의 사랑을 맛보며 신앙의 뿌리를 내렸던 많은 탈북 동포들은 이제는 각자의 일터와 가정 속에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살고 있습니다. 영락교회가 없었더라면, 뿌리째 옮겨온 이 땅에서 하늘 아래 고아 같았던 저희가 어떻게 위로받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었겠냐고 가끔 생각합니다. 지금도 힘들 때마다 조건 없는 사랑으로 안아주시던 권사님들이 그리워 전화기를 들고 응석을 부리곤 합니다. 지금은 서울을 떠나 살기에 영락교회에서 예배드릴 기회가 많지 않지만, 코로나19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할 때는 꼭 영락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김운성 목사님의 설교를 듣습니다. 그렇게 영락교회는 저의 친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영락교회를 스쳐 간 탈북민들이 현재 어떤 모습일지라도 친정처럼 돌아올 수 있는 어머니 교회, 힘든 자는 다시 힘을 얻고, 성장한 자녀는 돌아와 섬김을 이어가는 교회, 76년 전 이 교회를 세우며 드린 기도대로 아픈 이방인을 품어주고 민족복음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영락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떠나온 곳을 기억하고 반드시 돌아가는 연어처럼, 저는 제 신앙의 고향이자 탈북민들의 친정인 영락교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떠나온 영락교회로, 떠나온 북한 땅으로, 하늘나라 내 본향으로, 그렇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형제들에게 팔렸던 요셉과 늘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나를 부르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쓰임 받는 삶을 소망하면서, 영락교회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연어와 함께 통일 선교의 장자로서 영락교회의 사명과 사역에 동참할 수 있기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홀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주님을 경배합니다. 아멘.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 6)

 


박원희 _ 자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