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문화/교제

HOME > 문화/교제

「202106」 나는 행복한 여자입니다

작성일 : 2021-06-01 08:25

 

전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신분증 모두를 스리(소매치기) 당했다. 큰일났다. 당시는 6·25 사변 때라 신분증이 없으면 밖에 다닐 수 없었다. 길에서 수시로 경찰관들의 심문을 받을 때다. 신앙이 돈독한 외할머니한테 내 가방에서 소매치기한 사람을 하나님이 감동을 줘서 내 사무실 2층까지 갖다주게 해달라는 기도를 떼쓰듯 부탁했다.


그때 할머니께서 그런 기도는 어렵다고 하시면서 주머니 안에서 쌈짓돈을 꺼내주셨다. 동회(주민센터)에 가서 신분증을 재발급받으라는 것이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말씀이시다. 이틀이 지났다. 웬 낯선 남자가 2층 내 사무실로 올라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 남자 대답이 “뭐 분실한 것 없습니까?” “어마나, 내… 내… 신… 신분증” 말을 더듬었다. “전차 안에 떨어져 있길래 주웠습니다.” 그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소매치기 마음을 감동하게 해 2층 내 사무실까지 가져다주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정말로 믿겠다고 함부로 입을 놀렸던 경망한 내가 아니었나. “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연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거듭나는 영적인 입문에 들어서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네 아이 엄마로 전셋집을 구해야 했다. 그 당시 전화기 한 대가 총재산이었다. 그것을 판 돈 90만 원을 가지고 서대문 교남동 2층 양옥집을 계약했다. 잔금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다. 덮어놓고 기도만 했다. 무모하다 할 만큼 막무가내였다. 연년생 네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신앙 안에서 교육하리라는 일념에, 집 근처에 교회가 있다는 것 하나만 보고 계약했다. 그때 마음에 두었던 성경 말씀이 마태복음 6장 33절이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으로 하나님은 용기를 주신다.


잔금 치를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아무 대책도 없이 주일을 맞았다. 3부 예배 드리려고 본당 좌측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앞줄에 노부인이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예쁜 목도리를 두르고 앉아있었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저런 목도리를 하나 사드려야지 생각하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그 노부인이 뒤를 돌아다본다. 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10년 전 내 돈, 집 한 채 값을 가지고 도망간 사기꾼이다. 그가 예배 도중에 나가기에 나도 뒤따랐다. 구두를 벗고 맨발로 뒤쫓았다. 예배 도중에 무슨 짓이냐고 안내 맡은 고 신린관 장로님이 호통을 치셨다. 변명하려는 와중에 사기꾼 노부인을 놓칠 것만 같다. 잽싸게 치맛자락을 붙잡았더니 가방에서 거금의 수표 한 장을 꺼내준다. 약속하신 마태복음 6장 33절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어린 4남매를 유년주일학교서부터 착실히 신앙 안에서 교육할 수 있게 터를 닦아주셨다. 4남매가 성장해서 큰아들은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온성가대에서 봉사를 하다가 중년에 고인이 됐다. 철저히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철저한 크리스천이 되라고 이름까지 聖徹(성철)이라고 지어줬는데! 둘째는 신앙생활을 잘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聖勳(성훈)이라는 이름 그대로 미국에서 신학을 하고 10년을 목회하다가 귀국해서 부산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셋째 아들은 거룩하게 세움을 입었다는 뜻으로 聖建(성건)이라고 이름 지었다. 연세대 ROTC회장을 거쳐 현재 안수집사로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있다. 막내는 딸이다. 김활란 박사를 닮은 교육자가 되라고 惠蘭(혜란)이라는 이름을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밖에 없다. 남편 (고)정득만 장로는 본래 불신앙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교제 당시 부모님의 강한 반대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다행히 전란 중에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백마고지에서 (고)이경준 목사님(군종목사)을 찾아가서 기도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우리 교회 장로로 피택 받고 50주년기념사업 회장직을 맡아 8년 동안 50주년기념관을 짓느라고 전 해병대사령관 김윤근장로와 전 해병대지휘관 이재규 장로 등 영락교회 보배로운 장로님들과 많은 수고를 같이했다. 50주년기념사업을 마친 다음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당신하고 결혼을 안 했으면 나는 망할 뻔했다는 고백을 남기고 갔다. 나는 행복한 여자다.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김옥희 은퇴권사
강서·구로·양천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