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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 홈 스위트 홈

작성일 : 2021-05-07 10:00 수정일 : 2021-05-07 11:42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로 시작되는 노래를 아시지요? ‘Home Sweet Home’이라는 19세기 미국 가곡입니다. 본래 이 곡은 1823년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Clari, Maid of Milan)>에 등장했는데, 남북전쟁 당시에 병사들이 집 생각에 많이 불러 유명해졌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은 김재인이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붙인 제목입니다.


이 노래가 미국 노래라면, 우리나라에는 ‘고향의 봄’이란 국민 동요가 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이어지는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은 이원수 선생님입니다. 1911년에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이 선생님은 아기 때 창원으로 이사했는데, 너무 가난하여 서당에만 다니다가 1923년에서야 마산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습니다. 당시 방정환 선생님께서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를 열심히 읽었는데, 그때 쓴 글이 1926년 『어린이』 4월호에 입선했고, 그 글이 ‘고향의 봄’입니다.


두 노래 모두 분주한 삶에 쫓기는 우리를 잠시 멈춰 서게 하고, 떠나온 곳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그곳을 집이라 해도 좋고, 고향이라 해도 좋습니다. 떠나온 곳을 되돌아보노라면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움, 소중한 곳을 잊고 살아온 것에 대한 회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 혹은 머물 곳을 잃고 부평초처럼 떠도는 자기 처지에 대한 아픔의 눈물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집과 고향은 무엇일까요? 단지 건물이나 특정 산천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일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첫울음을 운 이후로 우리는 가정에서 인생이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가정은 보금자리이며 사랑의 샘입니다. 나이 들어 눈물지으며 떠올리는 스위트 홈, 고향은 결국 가정입니다.


그런데 참 마음 아프게도 홈 스위트 홈이란 아름다운 노래의 작사자인 하워드 페인 자신은 평생 한 번도 가정을 가지지 못한 채 방랑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핍박하는 것에 실망하여 미국을 떠났는데, 1842년에 튀니지 영사로 살다가 그곳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별세하기 일 년 전에 친구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세계 모든 사람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라는 맛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하겠지.” 또 임종 당시에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게 돌아갈 가정은 없지만, 고향의 공동묘지에라도 묻어 주시오.” 그는 죽은 후 31년이 지난 1883년에 미국 워싱턴 세인트 조지교회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을 떠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가 떠난 것은 집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님을 떠났습니다. 가정을 떠난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미리 받은 유산을 가지고 멀리 떠난 그는 결국 집 대신 짐승 우리, 가족 대신 돼지들과 함께해야 하는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때 그의 가슴에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은 아버지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은 그의 모습을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기록했습니다.


지금도 가정을 잃은 사람이 많습니다. 본인이 떠났는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가정을 잃은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요즘의 어린이에게는 고향이 없다고 합니다. 고향의 봄이란 노래는 동요입니다만, 정작 애창자는 노인들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고향은 “○○○아파트”라 하지 않을까요? 고향 이야기를 해 보라 하면 “100층짜리 빌딩이 있고요, 피자집 이 새로 생겼는데, 엄청 맛있어요!”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가정과 사랑하는 가족만 있다면 거기가 고향입니다. 이원수 선생님은 고향을 ‘꽃 피는 산골’로 표현했는데, 꽃이 핀다고 삼천리가 전부 고향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원수 선생님께는 사랑하는 가족이 산천이고, 가족의 미소가 꽃이었을 것입니다. 가족이 있기에 꽃도 아름답게 보이지, 그렇지 않으면 꽃은 오히려 슬퍼 보일 것입니다.


집을 떠났던 아들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이 누가복음 15장 20절에 나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게 아버지 사랑이요, 가정의 사랑입니다.


가정을 더 소중히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어떤 이유로 가정에서 멀어졌다면 다시 돌아갑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품은 원초적 가정이라 하겠습니다. 가정을 통해 주시는 복이 가득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