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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 한 세기를 살아내신 1921년생 나의 어머니

작성일 : 2021-05-06 17:16

 

1921년생 나의 어머니 이. 경. 일.


10대에 일제강점기를 겪고 스물넷에 8·15광복, 서른에 6·25전쟁과 피난 살이를 체험한 우리나라 역사의 산증인인 어머니를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어머니 세대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 온갖 역경을 이겨낸 고마운 세대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황해도에서 오빠, 언니들을 이끌고 나오신 뒤 서울 제기동에 터를 잡고 크게 포목점을 하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에 나가시면 저녁까지 한복을 팔고 맞춰주는 일로 생계를 책임지셨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면 외할머니와 온 가족 모두 버스를 타고 창경원에 벚꽃놀이 가고 도봉산으로 소풍 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김장을 하면 배추를 100포기씩 담가 독을 묻었다. 김칫독에서 꺼낸 김치로 겨울밤이면 김치말이밥을 맛있게 먹던 추억, 화롯불에 밤과 고구마를 구워 먹던 일, 홍릉산 옆 큰집에 계시던 천사표 외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홍릉산이든 어디든 따라다녔던 기억들….


연세가 드셔서 가게를 접은 부모님께서 영락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영락동산에 계시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우리 4남매 모두 영락 교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97세 가을까지도 막내딸인 나와 동행하여 수요평생대학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며 전철을 타고 다니셨는데 2018년 1월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이후, 4년째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계신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전화기로 잘 안 들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어느덧 면회 시간 10분이 끝난다. 휠체어를 타고 요양보호사님과 들어가시는 뒷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코로나19도 언젠가 끝나겠지. 어머니 손도 잡아보고 집에 모셔서 증손녀도 안아보시고 함께 함박웃음 웃을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앞으로 나의 삶도 언젠가는 홀로 보낼 날이 오게 될 테지. 그 외로움과 허전함, 막막한 시간을 오로지 내 곁에 계신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 숨 쉬는 끝 날까지 기쁘게 감사함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벚꽃잎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날 모두가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정병숙 권사 _ 관악·동작·금천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