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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삽시다!

작성일 : 2021-03-30 10:18

 

부활이 이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절의 진정한 관심은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지금 나도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20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실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믿음이란 예수님은 죽음도 이기셨고 지금도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린도후서 13:5)


저의 어머니는 제가 대학 4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쓰신 어머니께서 손을 꽉 잡으셨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고 유언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나와 내 동생들을 위해 기도해 줄 어머니가 없어졌구나!’는 사실이 가장 슬펐습니다. 묘지에서 하관식 마치고 오는 날, 자꾸 뒤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 묻고 온 그 자리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는 하나님 곁에서 나를 내려다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큰 위로가 마음에 임했습니다. ‘어머니는 오히려 살아 계실 때보다 더 세세히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이를 깨닫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부활은 그것과 다릅니다. 저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격려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옆에 함께 계시고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하심을 알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꼬박 하루를 함께 동행하며 말씀을 나누었는데도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겪고 있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의 복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가 속죄의 복음,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은 것이 은혜의 전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부활에서 ‘주님과 함께 산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로마서 6:4)


성경에서 세례의 의미는 하나 됨입니다. 곧 세례란 예수님과 하나 되었다는 징표로 주어지는 의식입니다. 세례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를 사함 받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로마서 6:5)


예수님의 생명은 부활의 삶, 생명의 삶, 능력의 삶, 예수님이 주님이신 삶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의 진정한 관심은 예수님이 2000년 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지금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의 종노릇을 하는 옛사람으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성질과 죄된 습관을 하나하나 죽여가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과연 나의 모든 죄성이 언제 다 죽을까, 과연 이 죄성이 다 죽을 때가 올까?’ 생각하며 절망합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이들도 대부분 이런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계속되는 마음의 평강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임재’ 뿐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도 살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의 주님과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십자가의 죽음에서 예수님과 하나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10~11)


사도 바울도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으로 임하는 열쇠입니다.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형편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어두움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 눌려 있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예수님과 함께 나는 죽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삽시다(로마서 6:1~5) 이것이 우리 영혼이 사는 길이요, 가정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임재하여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는 길입니다. 할렐루야!

 

 

 

 

 

 


유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