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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 부활, 빛으로 온 교회

작성일 : 2021-03-30 09:49 수정일 : 2021-03-30 10:08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창세기 1:2~4)

 


십자가와 부활
십자가와 부활은 구약시대 수천 년을 이어온 교회 건축에 변화를 준 근본적 계기가 되었다. 예수님은 가르침과 말씀 전도를 통해 교회의 전통적 관념을 바꾸셨다. 갈릴리해변, 요단강가, 산 등 어디서나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은 성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선포하셨다.


250여 년의 종교적 박해를 겪은 초대교회는 기원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로부터 기독교 공인을 받았지만, 정치·사회적 세력으로 변질하면서 크고, 높고, 위압적 형태의 교회로 건축하게 되었다. 높은 권위를 상징하려는 듯 화려한 장식과 엄청난 미술품으로 가득 채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교회는 예수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사실상 막아 버린 것이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교회 건축 내부의 구조와 장식 등 형식의 변화도 가져왔다.

 


빛으로 오신 예수, 하늘과의 통로
“낡고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둠이 가득찬 허공의 공간이 가로막는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어둠의 끝에 하늘에서 스며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발길을 인도한다. 그 빛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하면서 교회 건축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를 떠올려본다. 어스름 달빛 아래, 하나님을 향해 외롭게 기도드리던 어둠의 장소였으리라. 한 줄기 빛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구원으로 인도하는 소망의 빛으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빛은 고대로부터 성전과 교회 건축 설계의 가장 중요하며 유용한 건축언어로 인식되어왔다.

 

로마의 판테온은 천창을 통해 건물 안으로 빛을 불러들인다. 둥근 천창을 통해 산란하는 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돔 안쪽이 신비롭다.(사진2)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걸작인 하기야 소피아 대성당의 아름다운 모스크와 돔 형식의 지붕은 1500년이 지난 지금도 놀랍지만, 내부공간은 더 놀랍다. 왜냐하면 돔의 천창과 좁은 아치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찬란함은 공간 자체를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신비로움, 즉 신성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것을 건축 용어로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라고 하는데, 이런 효과는 수많은 중세건축물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현대건축에서도 그 추상적인 개념이 더 포괄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20세기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장식을 배제하고 본질적이고 순수성을 갖는 건축이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로 퍼져나갔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우드랜드 묘지공원(사진3)은 1917년 군나르 아스플룬트와 시그루트 레베렌츠가 설계했는데, 죽은 자들의 공간인 묘지를 인공정원과 같이 완벽한 조화로움을 이루는 장소로 완성했다. 부활의 예배당(The Chapel of Resurrection)과 우드랜드 예배당(The Woodland Chapel)을 거쳐 하이라이트인 신념, 희망, 거룩한 십자가의 예배당(Faith, Hope and the Holy Cross Chapel)에 이르면, 부활과 십자가, 즉 삶과 죽음의 고요함을 시각적 상징 하나 없이 완벽하게 놀라운 감동을 자아낸다.(사진4)

 

 


형체도 없이 자연 속에 슬쩍 기대고 있는 듯한 이 건축물은 이전의 교회 건축이 추구했던 권위와 신성에 대한 시각적 상징을 모두 배제하고 침묵과 고요함의 건축을 통해 우리에게 죽음과 부활을 얘기하는 듯하다.


파리에서 동남쪽 스위스 취리히 방향으로 400km를 달려 벨포르의 한적한 마을 외딴 언덕 위 성당이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 유럽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 건축물을 보려고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와 묵묵히 감동의 시간을 보내고 간다. 정식명칭이 노트르담 뒤 오뜨(Notre Dame du Haut)인 이 순례자예배당은 롱샹(Ronchamp) 마을에 있어 롱샹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1950년 세계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기존의 교회 건축이 가진 형식을 완전히 탈피하여 종교적 상징을 넘어 공간적 상징을 담아 설계했다. 그 가장 핵심에는 빛이 자리한다. 봄·여름·가을·겨울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아침과 저녁, 또 늦은 오후에 따라 공간적 인상을 변화시키는 빛의 유희는 이곳을 찾는 수많은 성도에게 깊은 신앙적 감동을 품게 했다. 르코르뷔지에는 기존 성당 건축의 형식과는 아주 다르게 해석하여 설계했지만, 오히려 그 공간의 의미나 각 부분의 건축적 요소의 표현은 무엇보다도 교회적이다. 창의 형식과 오색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영성적 감정을 일으킨다. 이렇게 빛을 자유롭게 활용한 건축물이 과연 그 이전에도 있었을까 할 정도이다. 마치 기도하는 손과 같은 느낌을 주는 언덕 위 외관은 얼핏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생명의 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롱샹은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과거로부터, 관념으로부터의 전환이다.


겨울이 끝나가는 2월 중순경에 방문했던 이곳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빛의 감싸임 속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느끼는 듯 시간의 멈춤을 경험했다. 건축가가 의도했건, 아니했건 공간의 질적 변화처럼 방문객의 감동도 셀 수 없이 다양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칠십 년 전에 건축된 롱샹은 한국의 교회 건축을 비롯해 많은 건축 작품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사진1, 5)

 

 

 

빛과 자연
자연이 아름다운 미국, 캐나다의 순례자 교회 중에는 가끔 나무숲 사이에 유리로만 건축된 교회를 볼 수 있다. 교회가 온통 나무숲 사이에 그냥 놓여 있어 예배공간의 신비로움을 자연이 대체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을 빛으로 추상화해 극히 제한된 빛을 사용하는 교회와 달리 이러한 교회는 빛에 완전히 노출되어 부활의 축복을 축제처럼 찬양하게 된다.


우리나라로 눈길을 돌리면, 경기도 가평 깊은 산속에 특별한 교회가 있다. 산속 길을 따라가는 끝에 학교처럼 생긴 하얀 건축물이 나타난다. 막상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빛과 자연의 잔치가 어우러지는 예배공간을 만나게 된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의 예배공간은 들어서자마자 부활과 축복의 공간임을 느끼게 하는 특별한 형식의 교회건축이다.


프랑스 그로노블 대학교수인 건축가 신영철은 기증받은 통나무를 이용해 예배공간의 덮개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신비한 빛의 공간을 구현했고, 이 통나무로 둘러싸인 공간을 영원한 생명적 건축으로 탄생시킴으로써 또 다른 형식의 비물질화를 이루어 냈다. 특히 수백 그루의 홍송을 사용한 예배공간은 마치 숲속 무중력의 새둥지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부유감(Floatness)을 느끼게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건축에 사용한 홍송은 베어낸 죽음 즉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을, 다시 연결된 홍송은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라고 한다.(사진6)

 


 

‘생명성’ 지향하는 교회 건축 기대
한국 교회는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상 가장 괄목할만한 확장을 이루었다. 그러하기에 셀 수 없이 많은 교회가 이 땅에 지어졌고 또 앞으로도 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 건축은 그동안 외형적 보임에 치중해 왔다고 생각된다. 더 큰 예배공간, 더 훌륭한 음향시설, 더 많은 교육공간을 원하며, 형태적 상징성이 더 강한 디자인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에 중점을 두어 ‘생명성’을 지향하는 교회 건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살핀 몇 가지 사례는 교회 건축에 있어서 빛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빛은 생명성과 깊이 관련된다. 침묵과 영적 고뇌로 탄생하는 부활의 교회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빛으로 우리에게 주님의 은총을 허락할 것이다. 부활, 빛으로 온 교회를 바라본다.

 

 

 

 

 


오동희 안수집사
성남·분당교구
간삼건축종합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