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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 누가 만물의 영장인가?

작성일 : 2021-03-30 08:48

 

우리는 영장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모를 때부터 인간은 만물의 영장(Lord of all Creations)이라고 배운다. 모든 피조물들을 주인 노릇하며 다스리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 자부심이 잔뜩 부풀어오른다. 과연 인간은 만물의 주인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


주인 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구의 주인으로 인정받으려면 단지 식물과 다른 동물에 대한 지배력뿐 아니라, 지구를 잘 보살피는 데에 필요한 덕목도 잘 갖추어야 한다. 가장이 대우를 받으려면, 다른 식구들을 물리적으로 지배만 해서는 안 되고, 집안의 경제와 안전 등을 고려하며 다른 식구들이 어느 정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하듯이, 인간도 지구의 주인으로 대우받으려면 지구상의 생물들이 균형 있고 조화롭게 지낼 수 있게 잘 돌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과연 지구라는 자연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하여 회의를 품는다. 지난 35년만 보더라도 인간의 환경파괴에 의하여 지구상의 생물종의 1/3이 사라진 것으로 WWF (World Wildlife Federation)는 보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화석연료 과용과 그에 따른 온난화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데,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며 문제해결에 전혀 진지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 지도 오래 되었다. 인간을 만물의, 자연계의 영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점점 의심스러워진다.


인간을 주인답지 못하고, 지배와 종속이라는 팍팍한 관계 속에 몰아넣는 데에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탐욕은 인간 밖의 자연환경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들 서로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런 문제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떠돌기를 멈추고 농경사회에 정착하며 성적 대상을 찾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다. 타인들에게 자신이 매력적으로 보이는가가 중요해지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에 의하여 판단하게 되어 결국 자신의 본연의 진실한 모습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타인과 경쟁하며 남들 눈에 비치는 모습에 몰두하면서 경쟁대상자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데에 집착하면서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문화의 시작이다. 경제력이 인간의 지배/피지배의 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고 인간은 낙원으로부터 더 멀어진다.


거의 400년전 한 철학자가 한 말이지만 오늘에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찌른다. 우리가 잃어가는 본연의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며 동물의 왕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에는 여러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다른 동물들처럼 쾌락을 좇는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을 효과적으로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한 영리함에 있어 다른 동물들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욕망도 지능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지 않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인간을 동물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양심이다. 나의 쾌락과 이익을 위하여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때 나의 내부에서는 경고등이 들어온다. 동물들은 자기 집단의 이익과 충돌하는 다른 집단에 대하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한 행위를 하고서도, 후유증을 앓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남에게 가한 행위 때문에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조차도 마찬가지다. 양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양심은 사회적 규범에 의하여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문화와 사회적 규범에 우선하여 규범을 만들어나가는 동력이다. 사도바울은 사랑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말한다(디모데전서 1:5). 우리는 기독교인의 가장 중요한 도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이 준 선물인 양심을 소중히 여기고, 여기에 마음을 청결히 하고 믿음을 다지는 훈련을 더할 때,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욕망과 탐욕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끝없는 갈구의 수레바퀴로 우리를 몰아넣는다는 것은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여 잘 알려져 있다. 장난감에 흥분하여 좋아하던 아이가 몇 번 가지고 놀다가는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장난감을 찾듯이, 욕망은 인간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기 보다 쾌락의 쳇바퀴에 머물러 끝없는 결핍으로 이끈다. 물론 내가 행복하기 위하여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하나님이 가르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이 이루어질 때 개인의 행복도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코로나 시대 생존의 문제가 절박해지고, 경쟁은 삶의 구석구석으로 다가온다. 양심과 사랑의 메시지가 절실해지는데, 기독교를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다. 마치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을 해야 지성인처럼 보이는 듯한 세태다. 이 기회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유익을 넘어 양심과 사랑의 메시지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를 되돌아 보아야 하겠다. 모든 피조물의 주인(만물의 영장)이 누구인가를 되돌아보고, 그 주인이 우리에게 준 양심을 소중히 키워 사랑으로 발전시켜야겠다. 양심과 사랑의 불꽃을 지펴 탐욕으로 기울어가는 삶에 균형의 메시지를 던져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향한 발길을 내딛는 것이 기독인의 소명이 아닌가 싶다.

 

 

 

 

 

 


김기현 교수
서울대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