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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십자가 앞에서

작성일 : 2021-03-05 19:30 수정일 : 2021-03-06 10:05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찬송가 151장을 불렀습니다. 1절 가사는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후렴 가사였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이 가사를 보는 순간, 십자가를 처음 본 것이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언제 처음 보셨습니까? 아마 그때를 기억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분들은 너무 어렸을 때부터 십자가를 봐 왔기 때문에 기억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길거리를 지나며 별생각 없이 곳곳에 서 있는 예배당의 십자가를 봤을 것이므로 언제 십자가를 처음 봤는지 떠올리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보려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처음 안 것은 언제입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어느 정도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서 교회에 다닌 분들도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시절, 혹은 그 이후 청년 시절에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은 때가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길거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예배당 종탑의 십자가를 바라보던 분들도 어느 날 친구 따라 참석한 예배시간에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은 경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한 동네에서 어려서부터 늘 보아오던 친구 여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여인으로 다가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에는 아무 감정도 없이 “○○야!” 부르며 장난치던 소녀가 평생을 함께 걸어갈 반려자로 여겨지면서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바꿔서 이렇게 묻는 게 좋겠습니다. 언제부터 십자가가 인생의 보배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까? 언제부터 십자가 때문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각자의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혹 아직 이런 경험이 없으시다면 언젠가 이 질문에 대답할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성도에게 십자가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151장을 부르던 날 후렴 가사를 보면서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처음 보던 날, 그 은혜의 의미를 처음 깨달았던 날의 감격이 지금도 퇴색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지입니다. 처음에는 신선하고 가슴 떨리던 것들이 나중에는 덤덤해지고, 당시의 감격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십자가는 어떨까요? 십자가에 대한 감동이 무디어진 나머지,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다니면서도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은 아닙니까? 151장 후렴은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십자가를 언제 처음 봤는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처음 봤을 때의 감격, 즉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은혜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니콜라스 루드비히 폰 진젠돌프(1700~1760) 백작은 오스트리아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경건한 부모에게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나에게는 한 가지 열망뿐이다. 그것은 예수님, 그분이시다” 할 정도로 신앙 열정이 있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선교 훈련을 받았고, 친구들과 기도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체험적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것은 십자가 그림 아래에서였습니다. 어느 날 미술품을 관람하던 그는 스타인벡이 그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림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림 아래에는 “나는 너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려주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라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림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렸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이 그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그 후 십자가는 평생 그의 신앙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는 모라비안의 지도자로서 헤른훗 공동체를 지도했고, 경건주의와 감리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찬송가 151장을 부르면서 새삼스럽게 첫사랑, 첫 믿음, 첫 기쁨, 첫 감동이라는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십자가가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손에서 영원히 구원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한다면 모든 원망과 불평은 사라질 것입니다.


올해도 사순절을 맞이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렵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더 깊이 마음에 모시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처음 본 십자가, 처음 깨달은 십자가, 그 은혜가 지금도, 생애 마지막에도 우리 안에 넘쳐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