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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 은혜의 무게

작성일 : 2021-01-28 16:30 수정일 : 2021-01-29 10:15

 

우리는 큰 은혜를 갈망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한 소위 ‘셋째 하늘의 체험’이나 에스겔에게 열렸던 하늘이 부럽지 않으세요?


그러나 은혜를 사모하기에 앞서서 생각할 문제는 은혜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정말 큰 은혜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다니엘서 10장 11절에서“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완전히 탈진한 모습입니다. 다니엘서 10장 2∼3절을 보면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또 10장 8절에서는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 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했습니다. 여기서 은혜를 받으면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고 힘과 의욕이 넘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집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눈과 같습니다. 눈이란 정말 가벼운 것입니다. 새털보다 더 가볍습니다. 그러나 그 눈이 계속 내려 쌓여 10, 20, 30cm가 되면 지붕이 내려앉고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집니다. 눈사태에 파묻히면 나올 수 없습니다. 이게 눈의 무게입니다. 눈은 가장 가벼운 것이지만, 정말 무거운 것이기도 합니다.


은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처음에는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가볍지만, 은혜 위에 은혜가 내리고, 또 은혜 위에 은혜가 내리면 나중에는 은혜에 깔려 죽을 지경이 됩니다. 은혜 받는 것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정말 큰 은혜를 받으면 깊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 속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사명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브리엘에게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라는 인사를 받은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녀인 자신이 아기를 낳는 일로 인해 번뇌에 빠졌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렇습니다. 그는 백 세에 아들 이삭을 낳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지만, 나중에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 때문에 번뇌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
이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작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무게를 느끼지 못하지만, 정말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도 되겠습니까?”라고 기도하면서 가슴을 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이런 이들이 선교사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남에게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최고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마지막에는 그 은혜에 깔려 죽게 됩니다. 욕망도 죽고, 교만도 죽고, 고집도 죽고, 다 죽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는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제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은혜를 더 많이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은혜를 그만 받으시겠습니까? 오히려 받은 은혜도 반납하시겠습니까? 결정해야 합니다. 더 큰 은혜를 받아 예수님을 닮아갈 것인가, 아니면 은혜를 그만 받고 내 식대로 살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편안하게 믿고, 적당하게 흉내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은혜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평생 교회에 다녀도 진정한 기쁨을 체험할 수 없으며, 신앙에 힘이 없습니다.


독일 신학자 본 회퍼는 연약해지고 영향력을 상실하는 원인은 값싼 은혜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값싼 은혜란 “회개 없는 용서, 삶을 바꾸지 않고 용서만 가르치는 것, 참된 신앙의 고백이 없이 세례 의식에만 참여하는 것,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진정한 교제는 강조되지 않고 성찬이라는 형식만 강조되는 것, 십자가 없는 은혜, 희생이 없는 제자도,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원하고 축복을 원하지만, 희생을 거부하는 성도, 생활과 삶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죽고 예수님께서 살게 되는 은혜를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전 존재가 밑바닥부터 새로워지고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전환되는 그러한 은혜를 받지 않으시렵니까?


2월은 졸업을 하고, 입학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또 우리 교회에서는 자녀와 함께하는 특별새벽기도회가 열립니다.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하고 싶으십니까? 현실을 고려하면 학교에서의 성적 중심의 교육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은혜를 체험하도록 하는 교육이라 여겨집니다. 다니엘이 받은 은혜를 자녀들이 경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부모와 자녀 모두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얻길 원합니다. 온 가족이 ‘말씀대로 365’를 통해, 깊은 기도를 통해, 인생이 변하는 은혜를 얻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