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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 빛 색깔 공기 우리가 죽음을 대할 때

작성일 : 2021-01-28 09:45 수정일 : 2021-01-28 09:56

 

제목만으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추측하기 어려운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죽음을 대할 때’입니다.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저자는 어느 날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의 암 선고를 듣습니다. 이후 당혹스러움과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며, 아버지와의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병상대화록인 것이지요. 특이한 것은 조직신학자임에도 죽음과 부활에 관한 통찰을 차가운 머리로 이성적, 논리적으로만 전개하지 않고 실존적인 입장에서 풀어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슬픔을 당한 자에게 위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결한 신앙으로 죽음을 미화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히 맞이하는 어느 노목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사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 아니라 참된 기독교에 대한 것입니다. 죽음은 삶과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임에도 우리는 자꾸 외면하고, 현재에만 집중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권말에는 저자의 아버지 김치영 목사님이 암 선고를 받은 후 작성한 설교가 실려 있는데 심지어 본인의 장례식 설교까지 준비하셨습니다. 실로 죽어가는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하는 진지한 설교인 셈이지요.


이 책이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까닭은 제가 전도사 시절, 저의 아버지 또한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고 암 투병을 하시다가 소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낫기를 기도해야 하는가, 아니면 순응의 마음으로 주님께 가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어느 것이 참된 믿음일까. 죽음 후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우리는 어떠한 몸으로 부활을 하는 것일까. 지금은 흐릿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지적인 호기심으로서가 아니라, 실존적인 자세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은 어떤 신학의 주제로, 객관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리고 바로 나의 것이 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책은 죽음이라는 실존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그리하여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미술관에서 터너의 작품을 관람하던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에게 감탄하며 말합니다. “이 그림 한번 봐! 터너는 공기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야. 공기의 빛깔. 네 눈에는 하늘과 땅만 보이고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 사람들은 공기를 잊었고 공기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 이 공기에 빛이 부딪히자 공기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어. 터너는 이것을 색깔로 표현한 것이지. 내가 터너를 위대하게 보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는 보았기 때문이야.”


어두움은 결단코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기에 혹여 어두움의 날들을 지내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면, 모든 것이 무채색의 의미 없는 날들을 보내신다면, 태초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시길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삶의 편린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올 한해 보내시기 바랍니다.

 

 

 

 

 


박지운 목사
고양·파주교구
전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