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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 가난조차 행복하게 하는 믿음

작성일 : 2021-01-05 12:05 수정일 : 2021-01-05 13:05

 

“사람에게는 감출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기침, 가난, 그리고 사랑….” 유럽에 흩어져 살아가던 유대인의 속담입니다. 어느 영화의 대사로도 나왔던 말입니다. 인간의 삶을 가만히 응시하는 애잔한 눈빛이 느껴지는 말이죠. 어디선가 숨죽인 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만 꼭꼭 숨겨두려 했던 사랑이 표정으로 몸짓으로 어색한 분위기로 다 드러나 버린 당혹스러움이 영화처럼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감출 수 없는 세 가지 중에서 ‘가난’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가난을 들키고 싶지 않은데 가난은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깁니다. 가난과 얽혀 있는 비참한 일상, 부끄러움, 무기력, 분노…. 가난은 우리의 삶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저주’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니 취업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업은 곧 가난을 의미하니까요.


고대인들은 ‘복 있는 삶’과 ‘저주받은 삶’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런 행복한 삶을 산다고 믿었습니다. 복된 삶의 정반대 편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삶 자체도 힘들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통념은 더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누가복음의 예수님 말씀은 파격적인 반전입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여기서 ‘가난하다(ptochós)’라는 말은 그냥 남들보다 벌이가 시원찮은 정도의 가난이 아니라, 구걸해서 먹고살아야 할 정도의 가난함을 뜻합니다. 비루하고 비천한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저주받은 ‘가난’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찾아내십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빈손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는 마음, 그런 복된 삶의 태도가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누구나 좋은 집에서, 잘 입고, 잘 먹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취업은 필수적이죠. 가능하면 미래가 보장된 직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가난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하필 가난한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약속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모든 가난한 사람에게 약속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 그 때문에 막막한 가난을 버텨내야 했던 사람들, 곧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사람들의 경멸과 조롱을 당하며 많이 울어야 했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인생들을 “눈을 들어 바라보시며”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라고!


누구나 다, 예외 없이, 가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겁니다. 시절이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나는 어떻게든 잘 취업해서 아무 문제 없이 살 거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나이브한 거죠. 우리는 언제든지 가난해질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은 가난에 빠지면 당황하고 분개하고 원망합니다. 모든 가난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예수를 가슴에 품은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이런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내 삶을 꿰뚫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아쉬울 것 없는 부요함 속에서 세상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이들에게는 섬뜩한 저주의 말을 퍼부으십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눅 6:24)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은 채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의 여유로운 웃음을 저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작심하고 저주하신 것들을 잘 살펴보면,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추구하는 것들입니다. 물질적 풍요로움, 여유롭고 쾌활하게 깔깔깔 웃는 삶, 사람들의 인정…. 예수님은 왜 그렇게 혹독하게 그런 ‘평범한’ 삶을 저주하셨을까요?


풍요로운 삶, 더 풍요로워지기 위해 올-인하는 삶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이 뭘까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비참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직장에 들어가 넉넉하게, 인정받으며 살아도 언제든지 질병과 죽음에 포획될 수 있는 연약하고 비천한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풍요로움은 그걸 살짝 망각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인생의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간절히, 목마르게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취업과 진로의 문제는 평생 우리의 삶을 따라다닐 겁니다. 청년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참 안타까운 경험을 자주 합니다. 취업 준비로 바쁠 때는 그것이 이유가 되어 믿음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취업이 되면? 바쁜 직장 생활과 직장 분위기를 탓하며 헌신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직장에 여유가 생기면? 또 다른 고민(예컨대 파트너?)으로 잔뜩 푸념만 늘어놓습니다. 취업 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할 거로 생각했지만 변함없이 외롭고 불행하고 쫓기는 삶입니다. 개인적으로 운 좋게 좋은 직장 들어가면 뭐 합니까? 갑자기 전염병이 돌면? 뜻밖의 경제위기가 닥치면? 금방 무너져 내리는 것이 우리의 안전입니다. 금방 허물어지는 것이 우리의 꿈, 우리의 건강입니다.


이것이 실상인데도 취업 잘하고 월급 잘 나오면 살짝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은 이렇게 잘 나가겠지?’ 아닙니다. 인생은 한순간에 비참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든 마음을 낮추고 몸도 낮추고 그분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가난하고 비참한 우리의 인생을 처절하게 마주하며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이 이루시는 나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난’이라고 부릅니다.


그 가난이 행복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예외 없이 비참한 인생에 값없이 쏟아 부어진 사랑, 나의 가난과 상처와 흉터마저도 행복의 조건으로 만드시는 사랑이 있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감출 수 없었던 사랑, 그래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나 버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그 사랑만 내 안에 있다면! 힘겨운 구직의 과정, 막막한 미래, 막연히 버텨내야 하는 가난, 눈물, 피곤한 하루하루도 복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만들어 가시는 나라를 꿈꾸는 마음이 희미해졌다면? 어서 그 저주에서 벗어나십시오.

 

 

 

 

 

 


손성현 목사
창천교회 청년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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