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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 평택 길위의교회 사람들 이야기

작성일 : 2021-01-04 18:32

 

‘인도하심’의 시작
벌써 2021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인생은 스스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길위의교회도 지난 몇 년간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감사한 은혜들을 경험해 왔습니다. 저희가 속한 평택 지역은 ‘읍’과 ‘리’ 단위 농촌 지역입니다. 또 이곳은 미군 부대가 주둔해 있는 지역으로 소위 ‘기지촌’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문화와 문화, 인종과 인종, 도시와 시골, 부와 빈 등 다양한 상황들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이 곳을 경계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2천 년 전 문화와 지리의 경계선에 있었던 안디옥교회처럼, 길위의교회도 주께서 이 경계선 위에 세워주신 공동체입니다.


사실 길위의교회는 교회 개척으로 시작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2016년 부친께서 위독하셔서 귀국해 간병하던 저는 어느 날 눈앞에서 한 아이의 큰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됩니다. 급히 아이를 병원으로 보내고 책가방에 있는 이름을 가지고 부모를 찾았는데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성이 다른 아버지와 가정의 말 못 할 어려움으로 학원 사교육과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이 지역에 200명이 넘었으며, 이 지역의 청소년 자살 시도율이 전국에서 1위(전체 평균의 4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길 위에서, 운동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했고 이후 근처 군부대 청년들의 도움으로 ‘길위의 사람들’이라는 야학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몇몇 아이들의 요청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길위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역의 지경을 넓혀주심
예배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지키는 사순절 기간에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신앙의 ’균형’ 그리고 가난한 사람과 부한 사람,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 젊은이와 어른이 서로를 의지하고 손잡고 살아가는 ‘조화로움’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 정신을 실천하고자 아이들과 부활주일까지 조금씩 돈을 모아서 더 어려운 형편의 독거 어르신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차비를 아껴 걸어 다니고, 자신의 물건을 팔아 첫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폐지를 줍는 10명의 독거 어르신들에게 구급약, 형광조끼, 마스크, 생필품 등을 선물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구제 사역으로 지금까지 매달 지역의 독거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연말에는 재능기부단체 손·만·세(손뜨개로 만드는 세상)에서 500여장의 모자와 목도리를 보내와 지역의 어르신들과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또한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움 요청에 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 대한 필요성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길위의교회 공동체는 ‘예배’, ‘교육’, ‘구제’, ‘선교’라는 네 가지 교회의 사명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사명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쌀을 사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도 주변에 쌀을 요청한 적도 없습니다. 한번은 쌀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걱정하며 기도했는데 며칠 후 처음 보는 미군으로부터 미국 쌀 10포대 정도를 받은 적도 있고, 또 언젠가는 조류 독감으로 계란 값이 폭등해 걱정했는데 그 주 토요일에 집사님 한 분이 오이를 주신다고 연락하고 오셔서 오이 몇 개와 계란 10판을 내려놓고 가신 적도 있습니다. 지난 4년간 경험했던 신비로운 일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야학과 교회사역을 하면서 힘들 때가 많지만 이 같은 놀라운 경험을 할 때마다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드릴 때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구절에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사역의 귀중한 열매들
이곳 야학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어려운 가정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로 목숨을 끊어 버리려 했던 아이, 부모의 폭력과 다툼, 친구들의 따돌림, 가난과 장애의 아픔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성도들의 도움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아이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알파벳도 읽지 못했던 아이들이 지금은 관내 중학교에서 전교 1, 2등은 물론이고 아이들 모두가 전교 10등 안에 있습니다. 길위의교회 야학은 국가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운영되며 아이들에게도 전액 무료이지만 단 하나의 약속을 받습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손을 절대 외면하지 않기’입니다. 올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선생님이 부족해지자 아이들이 친구들과 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모두 눈부신 성적과 결과를 냈습니다. 4년간 훈련받은 아이들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돕고 친구들을 도우며 교회공동체의 일꾼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시험 기간 중에도 새벽예배에 나와 예배드리고 학교에 갈 정도로 최선을 다해 주를 섬기고 미래를 준비합니다. 조만간 이 아이들이 한국 사회의 곳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을 바꿀 것이라 확신합니다.

 


근교 농촌 사역을 위한 작은 바람
최근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농촌과 도시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흔히 도시개척교회에서 고민하는 재정자립, 노령화, 성도 수 감소에 대한 문제들이 농촌 교회들 속에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목회자들 특히 젊은 목회자들이 지속해서 도시로 향하고 있는 반면, 농촌 선교에 헌신하는 젊고 열정 있는 목회자들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재정, 가족 상황, 자녀 교육 등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농촌의 교회가 살아나고 선교의 열매가 가능하게 하려면 재정자립이나 선교의 기술적 혹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 앞서서 헌신하는 목회자와 평신도 사역자들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비롯한 목회자들이 농촌교회에서 열심히 목회하여 도시교회처럼 만들겠다는 생각이나, 반대로 농촌 교회를 정적이고 특색 있는 영성수련원과 같이 구성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농촌에 남아야만 하는 소수의 사람, 언젠가는 자라서 도시로 가게 될 아이들, 농촌으로 일하러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 속으로 찾아가 섬기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의 동역자들,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와 각 교회의 노하우 그리고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특수한 농촌 선교 사역에 헌신하는 지도자들이 더욱더 많이 필요합니다.


영락교회도 한경직 목사님과 실향민 27명이 모여 천막교회에서 시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한 목사님과 성도들이 향후 재정자립이나 몇만 명 대형 교회를 꿈꾸며 공동체를 세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방 후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내려온 사람들! 비록 적은 수였지만 목회자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지금 영락 공동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신하건대 하나님께는 지금의 대형 영락교회도 너무나 귀한 열매이지만, 70년 전 천막교회의 소수의 성도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열매였을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작은 열매들이 헌신하는 목회자와 소명을 가진 동역자들을 통해 지속해서 세워진다면 농촌 교회의 선교도 새로운 희망이 보일 것입니다. 저희 길위의교회는 이와 같은 거룩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순종하며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에도 영락교회와 길위의교회 그리고 한국의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용준 목사
길위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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