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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 나의 생활을 찬양으로

작성일 : 2021-01-04 11:17 수정일 : 2021-01-04 11:34

 

네가 찬양하는 목소리가 참 좋으니
1985년 8월 어느 주일, 영아부 시절부터 으레 그래왔듯 영락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제 옆에 앉아계시던 어느 중등부 교사가 오셔서 “네가 찬양하는 목소리가 참 좋으니 성가대를 하면 좋겠다. 토요일 성가대 연습에 와서 오디션을 받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토요일 연습에 가서 오디션 받고 중등부 1학년 성가대에 입대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을 찬양으로 시작하는 순간이었죠.


중등부, 고등부를 성가대로 봉사하며 지나는 동안 드렸던 많은 찬양의 가사들은 사춘기의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는 메시지였습니다. 또 젊고 열정 넘치는 지휘자·반주자 선생님, 좋은 선·후배, 친한 동기들과 함께 찬양으로 예배드리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찬양대와는 다른 방법, 그러나 똑같은 찬양
중·고등부 시절 동시대의 크리스천 학생들에게 두란노 ‘경배와 찬양’으로 대표되는 열린 예배는 일종의 영적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 어른들이 완고하여 거룩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가로막고 있다’라는 치기 어린 판단으로 반항심에 몇 년 교회를 떠나 있었습니다. 그사이에 직장생활하고, 대학도 다니고, 군대도 다녀왔지요.


군을 전역하고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서 믿음을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영락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지인 손에 이끌려 군부대 선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청년부 찬양선교부에서 보컬로 7년 가까이 활동했습니다. 찬양대의 합창과는 다른 방법으로 믿음을 표현하는 복음성가들에 내 영혼이 크게 감동했고, 우리의 찬양을 듣고 함께 부르며 갈급한 영혼을 적시며 믿음의 군사로 굳게 서기를 다짐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그들을 일으키시기 위해 나의 입술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찬양팀에서 워십 댄스를 맡았던 한 자매를 만났고, 지금도 제 옆자리에서 가족을 위해 항상 기도하며 믿음의 가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영원한 갈보리로
30대 초반 이후로 찬양팀도 내려놓고 잠시 찬양과 거리를 두던 시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게 되어 아내를 무척 힘들게 했던 무능한 가장이었지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인 가장입니다.


당시 지인의 소개로 지금까지와 다른, 완전히 생소한 분야의 일을 시작했고, 몇 년 지나고 일이 익숙해지면서 찬양과 멀어짐으로 느끼는 허전함과 갈급함이 커질수록 예배드릴 때마다 들려오는 찬양대의 찬양들이 영혼의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감동을 직접 느끼고 싶다는 마음에 찬양대로 섬기기로 결심하고 우리 교회의 여러 찬양대 중에 어느 찬양대에서 섬길까 고민하던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A.크라우치 목사님의 ‘나의 찬미’(My Tribute) 라는 찬양곡 번역 중에 “주여, 나를 영원한 갈보리로 인도하소서”라는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2013년 2월 어느 토요일 오후에 ‘갈보리찬양대’ 연습실 문을 두드렸지요.


하지만, 잦은 주일 근무와 주말을 불문하고 밥먹듯 생기는 야근 등으로 인해 예배에 찬양대로서는 경우가 절반도 안 되는 생활이 2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다른 대원들의 믿음과 열심에 누가 되는 것 같아서 2014년말 찬양대를 내려놓았습니다.

 


어디 있다가 이제야 돌아왔어!
2년 넘게 찬양대를 떠나 있었지만, 함께 찬양하던 형님들이 주일에 가끔 얼굴 마주칠 때마다 ‘다시 갈보리로 돌아오라’며 함께 찬양하기를 권면하시던 말씀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찬양대 다시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어?”라며 재촉하는 아내의 말에 못 이기는 척 2017년 가을에 다시 재입대를 결심했습니다.


재입대 오디션 자리에서 저를 반기시던 지휘자 박신화 장로님의 첫 말씀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돌아왔어!”였습니다. 2년도 안 되는 기간을 찬양대로 섬기다 내려놓은 지 2년 반 넘게 흘렀는데 그래도 기억하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말씀에 마음이 정말 편안해지고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주일에는 근무하지 않는 직장으로 이직하도록 역사하셨기에 생업의 염려 내려놓고 갈보리찬양대에서 찬양으로 예배드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어 지금도 찬양대로 섬기고 있습니다. 찬양대로 섬기면서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큰 딸을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자라게 하셔서 아버지와 같은 찬양대에서 함께 찬양으로 예배를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내 영혼을 호흡하게 할 찬양을 멈추지 않게
어렴풋한 기억에 코흘리개 시절 처음 배운 노래가 ‘동방 박사 세 사람’이었고, 학창 시절 찬양 소리를 곱게 여기신 주일학교 교사의 권유로 찬양대를 시작하면서 찬양과 예배가 내 삶으로 다가왔으며, 이유 없는 반항으로 주님을 멀리하다 돌아왔을 때 찬양으로 군인들에게 주님의 구원 사역을 전했고, 지금도 찬양으로 예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저 저란 사람에게 찬양은 숨 쉴 수 있게 하는 공기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제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으나, 마음속에서 항상 기도합니다. “어느 때나 어디든지 내 육신을 호흡하게 하는 공기처럼, 내 영혼을 호흡하게 할 찬양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김현성 집사
인천교구
갈보리찬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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