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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 일상의 삶을 영성생활로 만들어라

작성일 : 2020-12-03 09:12 수정일 : 2020-12-03 09:51

 

코로나19 시대의 목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사태는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이 되리라고 예측한다. 사태가 끝난 후에도 이전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가리라는 기대보다는, 이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사도 바울이 경험한 시대는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교차하는 전환기 시대였다. 바울에게 ‘이 세대’란 율법의 시대를 말한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야망의 시대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은혜의 시대가 열렸다. 바울은 이것이 새로운 시대를 향한 대세적 흐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은혜의 시대를 위해 율법의 시대는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당시 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고이다.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분별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시대가 중첩되어 있는지, 무엇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흘러가고, 또 흘러가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시대의 특징을 무엇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너무 방대하고 큰 질문이다. 우리가 몸담고 실제로 직면해 있는 교회의 상황과 성도들의 상태를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의 교회는 모이는 곳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성도들을 한 장소에 많이 모이게 하면, 그것을 성공적 목회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에 교회는 흩어지고 있다. 교회가 아닌 곳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공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어디나 교회가 될 수 있음을 공포하고 성도는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다. 흩어짐 속에서도 교회가 가능하며, 개인도 교회일 수 있다고 체험했기에, 교인들 상당수가 그것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한 사람의 대중 지도자(목회자)가 양 떼를 몰아가듯 하는 몰이꾼적 목회는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영상매체를 통한 비인격 교제에 각 개인의 신앙 여정을 맡겨둔다면 그다음 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의 교회는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가 될 수 있다.

 


1. 코로나 이후에 나타날 징조들 : 비대면 문화의 일상화와 교회 영향력 약화
코로나19의 영향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비대면적 소통 수단은 더 익숙해져 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불가피하게 어떤 목적의 소통이든지 대면적·비대면적 수단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이 위기 상황을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영성생활을 더욱 활성화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교회 상황으로, 중세 유럽 흑사병 후에 있었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해본다.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교회의 가르침에 대항하는 문화가 적극적으로 형성될 것이고, 인간의 탐욕을 허용하는 과도한 인권주의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지난 8월 27일 대통령과 교단 대표들과 면담 때 오간 대화 속에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상징성이 가득 담겨있다. 대통령은 교회에 코로나19 바이러스 방역에 협조를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예배나 기도가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겠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방역은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공동대표(김태영 통합측 총회장)는 ‘종교·집회·표현의 자유보다 국민 생명·안전이 우선’이란 대통령 발언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너무 쉽게 공권력으로 제한할 수 있고,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서 매우 놀랐다” “교회와 사찰, 성당 같은 종교 단체를 영업장이나 사업장 취급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모두(冒頭) 발언은 종교의 제한적 역할을 공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도전에 저항해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설득력이 약해 보였다. 대통령은 이미 ‘국가에 속한 교회’를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성도들은 어떻게 영적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는가?

 


2. 일상생활로서의 영성생활 개발
종교개혁 시대를 돌이켜 본다.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그 당시의 개혁자들은 성도들에게 흑사병으로부터 할 수 있는 만큼 멀리멀리 도망가 늦게 돌아오라고 했다. 개혁자들은 그 현장을 떠나지 않고 위험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해내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물러서지 않으며, 그의 전능의 말씀이 업신여김당하거나 무시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 믿음을 일상의 생활로 끌어들여서 일상을 영성생활의 현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1) ‘일상’의 신비
의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를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그런 평범한 일상의 시간이 우리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찬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일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창설해 놓으신 신비의 동산이다. 그 동산에서 스스로 양식을 얻기 위해 그 신비를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것을 일상의 영성생활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의 신비를 찾아내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물음이다. 물음을 던지면서 일상에 숨겨진 신비와 의미가 발견된다. 성찰적 삶을 위한 물음은 이런 것들이다. △일상의 삶이 부름을 받은 장소인가? △내가 처한 일상생활이 지향하는 방향은 어디인가? △내가 선택한 일상이 하나님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는가? △그것이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미가 나를 안식과 조화의 삶으로 이끌어 주는가? △일상에서 발견되는 의미가 최종적인가?


2) 현대사회와 영성
우리의 일을 부름 받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는다면, 일상의 일들이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영적생활이 될 수 있다. 기독교적 신학을 일상적 삶에서 실현해 낼 때 그것을 우리는 기독교 영성이라 부른다. 기독교적 영성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해서 ‘성육신 영성’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성육신 신학의 지향점은 하늘과 땅의 통합과 일치이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인간을 하늘로 데려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늘을 끌고 오셔서 하늘을 펼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 역사 너머로 숨어들어 가지 않으시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으로 강림하시어 이 역사 속에 재진입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가신다. 이러한 성육신적 영성은 우리의 일상 삶으로 깊이 파고들어 와서 일상과 비상, 상식과 초월, 자연과 초자연, 세속성과 거룩성을 통합하는 지혜를 얻게 전해주었다. 이것을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실현해 내는 영적 삶이 성육신적 영성에 바탕을 둔 ‘일상의 영성생활’이다.

 


3. 영성훈련을 위한 제안들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우리는 첫째, 홀로라는 삶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그 홀로라는 삶의 형태를 어떻게 영성생활로 전환할 수 있는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틈새를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비대면적 거리 두기는 공감능력(compassion)을 떨어뜨리게 한다. 건강한 인간관계가 깨져 가면서 불안과 우울증, 좌절감과 무기력함 등의 정신적 질환이 급증하게 된다. 비대면적 문화에 익숙한 세대와 그러한 문화를 불편해하는 세대 간의 분리와 갈등이 두드러지면서 상호적 인간적 흐름이 막히게 된다. 공동체적 환경 속에서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가 형성되고, 묵시적으로 영적 지혜가 전승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이 더 이상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결핍을 어떻게 보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에 공동체적 영성훈련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교회 성장 방법으로써 소그룹 활성화 등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그러한 소그룹 운동을 이용해 공동체적 묵상과 성찰의 삶을 개발해 가는 것이다. 공동체적 훈련들이 영성생활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결정적인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며,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일성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1:15)이다. 예수님은 교회 공동체를 자신의 몸으로 부르셨다. 따라서 교회 구성원은 모두 이러한 목표를 철저히 공유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소공동체 모임을 활성화해야 한다.

 


4. 일상으로서 묵상의 삶
묵상은 방법이 아니고 삶의 태도를 말한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아가며, 그 실존을 받아들이는 삶의 유형이다. 따라서 묵상은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다림의 삶이 필요하다. 묵상의 기본자세는 능동적인 훈련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인 받아들임이다. 절대자의 주권에 마음을 개방하고, 그 주도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름과 요구와 목적들을 분별하고, 그것들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묵상 생활의 핵심이다.


묵상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하기 전에 절대적 신비에 온전히 자신을 개방하도록 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마틴 하이데거는 절대자의 신비 안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자신을 묶고 있는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삶에서 오는 여러 회의와 질문들을 서둘러 막기보다는 실체 그 자체가 드러나도록 기다리라는 말이다. ‘묵상적 삶’이란 존재(하나님)를 향한 구심력을 항상 확인하면서, 창조활동(원심력)을 하는 삶이다.

 


5. 오늘의 영성은 통합과 일상이다
기독교적 영성은 성육신적 영성이다. 그 영성은 거룩과 세속의 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새하늘과 새 땅에서 살고 있으며, 그러한 세상을 촉진하도록 부름을 받은 삶의 양태가 영성생활이다.

 

 

 

 

 

 

 


유해룡 목사
모새골공동체교회

 









 

 

* 이 글은 지난 9월 15일 열린 <2020 포이메네스 온라인 공개강좌> 내용을 축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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