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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소수로 지내기

작성일 : 2020-11-05 09:09 수정일 : 2020-11-05 13:49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이사야 1:8~9)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중병을 앓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청천벽력 같은 말은 아닙니다. 이미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걱정하며 말하곤 했습니다. “어디 안 좋아요? 피곤해 보이네요.”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자신도 이상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피곤했고, 여기저기 아팠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짐작을 의학적으로 확인해 준 것이었습니다.


이 환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한국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병원에 가 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기독교인 아닌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했습니다. 교회의 무질서, 비도덕적 모습, 분규, 본질에서 벗어난 행태를 염려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교회 스스로 증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증세는 이삼십 년 전부터 나타났습니다. “성장이 멈추었다” “전도가 안된다” “신앙이 형식적”이라는 말들을 들어 왔습니다.


주변에서 성장하는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정체되거나 줄기도 합니다. 간혹 느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동 성장이 대부분입니다. 어린이가 자랄 때는 키도 크고 몸무게도 늘고, 머리도 커지고, 팔도 길어지고, 다리도 길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만 성장하는 것은 몸은 그대로인데, 한쪽 다리만 길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한쪽 다리만 자라면 자랄수록 온몸은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계가 개신교인의 감소를 보여줍니다. 통계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한국 교회의 병을 진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는 코로나19를 겪는 과정에서 마치 혐오 집단처럼 규정되어 더 고통받고 있습니다. 증세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본래 교회는 사회에서 소수였습니다. 구한말 선교 초기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가 가장 왕성했던 1980~2000년대에도 20% 주변에서 맴돌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소수였고, 지금도 소수입니다.


그런데 이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숫자로는 소수였지만, 심정적으로는 다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후진 사회였을 당시에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의료 등 전 분야에서 교회가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여론 주도층의 다수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힘 있는 다수!’라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더구나 영락교회처럼 규모가 있는 교회의 성도들일수록 이런 생각이 더 강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수입니다.


이제 우리는 소수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소외되는 외로움, 따돌림당하는 설움, 주류가 아닌 아픔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박해당하고, 욕을 먹는 일을 잘 견뎌야 합니다. 이 상황에 분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서 말씀처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이것도 없었을 것이라 여기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큰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작은 회사로 옮기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구멍가게 주인이 되면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견디어야 합니다. 포기하면 끝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소수로 잘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선배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나 애굽에 비해 작았고, 초대교회 역시 로마 제국 안에서 아주 적은 수였습니다. 그러나 선배들은 소수였으나 포기하지 않았고, 적었지만 생명의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의 능력과 사랑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으스대지 말아야 합니다. 비웃음만 살 뿐입니다. 그 대신 깊이 기도하고 작은 자 하나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다수라 생각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형식에 흐를 위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아픔을 느끼며 눈물로 드리는 기도는 진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수라 해서 무조건 인정하는 분은 아니십니다. 오히려 소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금이 귀한 것은 양이 적기 때문입니다. 소수라 낙심하지 말고, 고귀한 소수가 되어야 합니다. 멋진 소수로 정금처럼 존재합시다. 천국은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 중에 십사만 사천 명으로 상징되는 소수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