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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감사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작성일 : 2020-11-05 11:20

 

그리스도인의 대표적 절기인 추수감사절, 한 해의 결실을 거두면서 더불어 감사의 의미를 새기는 이 절기는 구약의 맥추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맥추절은 보리 수확을 뜻하는 ‘맥추’에서 왔습니다.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첫 번째 열매를 드리는 ‘첫 열매의 날’입니다. 또한 이날은 맥추‘감사’절이기도 합니다. 이날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난 반년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반년 동안도 잘 지켜주시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보리와 쌀을 이모작 해온 우리나라의 농경사회에서 맥추감사절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수확한 보리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반년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남은 반년을 바라보며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농촌에서조차도 과거와 같은 분위기를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맥추감사절의 의미도 점차 잊혀 가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합니다.


맥추절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오순절 또는 칠칠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날을 기념해 지키는 절기를 유월절이라 부르는데 이날,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5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해서 오십,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유월절 당일을 뺀 사십구일(7×7=49)이라 하여 칠칠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날은 구약과 신약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맥추절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내산에 강림하신 날입니다.


신약의 오순절은 마가 다락방에 있던 120명의 제자에게 성령으로 강림하신 성령강림절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여 각 사람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 불의 혀와 같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각 나라의 방언으로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맥추절과 오순절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만남/임재’라고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의 전승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방향을 백성들에게 알리시고,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점으로 성령의 임재를 통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감사의 제목과 더불어 이 사회가 너무나 아픔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아픔과 왜곡된 시선, 전염병이라는 제한된 상황에서 인간관계의 부재 등 우리의 삶 외부와 내부를 병들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우리가 누려야 할 감사마저 희석되는 이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무엇보다 저 자신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자세로 감사의 제사, 예배를 드려야 할지, 삶의 방향성을 찾아야 할 중요한 분기점에 놓여 있습니다.


성경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구약과 신약 통틀어 성경에서는 총 185번 감사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구약에서는 126번, 신약에서는 59번 등장합니다. 저는 신약에 감사가 더 많으리라 여기고 찾아보았는데 의외로 구약에 2배나 많이 등장했습니다. 감사가 기록된 곳을 체크해 두고 그 구절을 보면서 과연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의 첫 감사는 레위기였습니다. 레위기 7장에 화목제를 소개하면서 감사제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구약 성서의 감사 구절을 쭉 읽어 내려가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가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되는지 감사의 방법과 드리는 자의 자세에 관해서는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끔 감사의 내용과 이유가 나오지만, 감사가 기록된 대부분의 구절에는 방법이라든지 우리의 자세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록된 것은 그냥 ‘감사하다’라는 겁니다. 호기심을 품고 신약을 펼쳐보았습니다. 신약에서 감사가 가장 처음 나오는 곳이 마태복음 11장 25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비밀에 대해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만 그 비밀을 보이신 것에 대한 감사 구절입니다. 감사의 이유는 분명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기대했습니다. 이 감사에 대한 구절들을 찾아보면서 ‘내가 하나님께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감사를 드리는지를 깨닫게 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있는 비법’을 좀 찾고 싶었습니다. 정말 이 답답한 현실 가운데서 무릎 꿇지 않는 당당한 감사, 내 마음에 충만히 흐르는 감사함을 드릴 수 있는 자세, 핵심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부분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성경을 묵상하면서 의외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감사’라는 단어를 쓰는 대부분의 구절 앞에는 ‘여호와께, 하나님께’라는 단어가 같이 쓰인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자세는 모르겠습니다. 감사의 방법도 모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성경은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계속 고민을 했지만, 갈피가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묵상하는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성경을 다시 펴서 ‘어떠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중심으로 구절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역대상 16장 말씀에는 감사해야 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16장에는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 건포도로 만든 과자를 나누어 줍니다. 16장 8절부터 이 기쁨을 노래로 표현합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이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이적과 법도를 행하신다고 합니다. 그의 능력이 온 땅을 덮고 열방의 왕을 꾸짖으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온 땅은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합니다. 그의 영광과 기이한 행적이 만민 중에 선포됩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십니다. 그를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귀와 위엄과 능력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감사의 핵심이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도 아니요, 자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과 영광 앞에 압도되어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무릎 꿇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사랑하는 영락 성도 여러분, 상황에 매몰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뒤덮을 것 같은 현실의 고통에 눈을 맞추지 마십시오. 그때 우리가 할 것은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보는 것입니다. 그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께만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사 제목, 감사 대상은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상황에 따라 너무나 쉽게 변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자녀가 좋은 직장에 취직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즐거운 감사의 제목입니다. 그러나 돈은 있다가도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취업했다 할지라도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것이 직장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자녀를 허락하셨다 할지라도 그 자녀들이 때로는 짐이 되고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제목을 뛰어넘어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만족할 때,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될 때, 진정한 감사의 샘물이 터져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이 감사는 마치 끝이 없는 샘물과 같아서 삶의 즐거움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내 삶의 고통과 번민, 아픔이 찾아온다 해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될 줄 믿습니다.

 

 

 

 

 

 

남정열 목사
종로·성북교구
IT미디어부, 홍보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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