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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예수님처럼 이웃과 공감하며 섬기는 우리

작성일 : 2020-11-05 10:32 수정일 : 2020-11-05 10:57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은 성도들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가혹하리만큼 어려운 시간입니다. 이제껏 누려왔던 일상이 파괴되었고 통제와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오늘이 있으며 긍정적인 내일을 꿈꾸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도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는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과 함께하는 성도는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세상을 향해 어떤 모습과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저는 우리가 공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공감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 더 나아가 그 사람 자체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감에서 다른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감은 동정과는 그 맥을 달리합니다. 일반적인 동정이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보고 측은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면 공감은 더 나아가 그 상황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동정은 물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고 물 밖에서 정말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공감은 물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에 함께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 완전히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무리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이는 어려운 일, 아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우리에게 행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우리를 측은하게 여기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우리를 온전히 알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경험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십니다. 이러한 고난을 당하신 것도 우리를 아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2~5)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것입니다. 잠시 잠깐은 나의 상황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프고 힘들고 외로울 때 나와 함께해주는 친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족들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해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우리를 알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경험을 함께 하시는 ‘공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의 모든 질고와 고통을 대신 감당해주시는 주님이 되십니다. 또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성령님으로 함께 하시는 영원히 우리를 이해하시고 동행하시는 동반자가 되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과 동행하면 할수록 성도는 외롭지 않게 되며, 세상이 알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공감을 받은 성도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공감하셨던 것처럼 이 세상의 사람들을 공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의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먼저 경청해야 합니다. 경청은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뿐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알고자 하며 그 사람의 말에 온전히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청은 사랑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의 말을 들을 때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형편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세상으로 들어가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녹지않는 소금처럼 세상에서 녹지 않고 자신이 편하고 원하는 환경에만 안주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흔히 방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멸망을 향해 가는 세상에서 교회는 분명 구원의 방주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방주인 동시에 구조선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으로 나아가 물에 빠진 이웃들을 사랑하고 공감함으로 그들을 섬김으로 건져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섬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삶의 자리에서 타인을 보다 배려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실천이 없이 타인의 삶을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작은 예수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 타인을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에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나의 삶을 채워갈 때,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감으로 세상을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든 오늘이지만,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닮아가며 이 세상을 공감하며 섬기시는 모든 영락의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김진우 목사
안양·수원교구
친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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