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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 하나님만 영광 받는 예배 ‘빛과 소금’ 교회 본질에 집중

작성일 : 2020-06-30 13:04 수정일 : 2020-06-30 13:51

 

최근 인류를 덮친 광풍이 아직도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진정세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새롭게 기승을 부리는 곳도 있습니다. 2020년 5월 22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는 510만 6,155명으로 5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사망자도 33만 2,978명에 이릅니다. 국내 확진자도 1만 1,142명이고, 사망자는 264명이나 됩니다. 전쟁도 아닌데 수십만 명이 죽는 엄청난 재앙이 닥쳤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얼마나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힐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각,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전히 바뀌었고, 신앙에도 엄청난 변화와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예배와 교회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자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절감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마치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이 돌아가는 양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인간을 위해서라면 자연과 환경, 동물과 식물을 마음대로 남용해도 괜찮다는 오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의 욕망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렸고, 이웃을 이익의 수단으로,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15)라는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저는 과학에는 문외한이라 이번 바이러스의 숙주가 천산갑인지, 박쥐인지, 다른 동물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우리 인간의 욕심이 진정한 숙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이러스의 창궐은 인간이 욕심에 따라 동식물과 자연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착취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금껏 맞이한 위협보다 더 큰 위협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둘째로, 예배의 본질을 성찰해야 합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새삼스레 묻게 됩니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방향은 위를 향한 눈길과 마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우리의 눈과 마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에 더 쏠렸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마치 나 자신이 은혜를 받으면 ‘좋은’ 예배인 양, 사람들이 기뻐하면 그것이 ‘성공적인’ 예배인 양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묻게 됩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는지 혹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는 예배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온전히 영광을 받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한목소리로 마음껏 찬송하고,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눈물로 때로는 환희로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를 떼는 예배가 얼마나 그리운지요. 인간의 영혼 안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바로 그 시간 우리 영혼이 만족을 누리고 행복해진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이 참으로 옳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가 얼마나 큰 특권인지 깨닫고,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왜 그리고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되묻고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고백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예배의 중요성과 본질을 성찰하고, 예배를 진정으로 사모하게 됩니다.


셋째로, 교회의 본질을 생각합니다. 얼마 전 신천지 집회가 확산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교회까지도 마치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인 양 공격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 유독 교회에 대해서만 이렇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교회가 온전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가 지나치게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결과,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호감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입니다. 이것은 교회는 곧 세상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고, 거룩한 공교회(公敎會)로서의 공공성을 상실하고 사사화(私事化)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동시에 교회의 공동체성을 곰곰이 되새겨봅니다. 왜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는지, ‘주님의 몸’이라 일컫는지, ‘성령의 전(殿)’이라 말하는지 말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개인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우리는 각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룹니다. 세례를 통해 주님의 몸에 접붙임되고, 성만찬을 통해 영적인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법정 기관이나 가시적인 제도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최근 함께 모이지 못한채 예배드리면서 공동체의 지체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만찬의 신비를 통해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와 자매가 보고 싶습니다. 내 곁에서 함께 봉사하고 섬기고 나누었던 이들이 하나님의 가족이었음을 새삼스레 고백합니다.


우리는 최근 예기치 못한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내가 누구인지, 예배의 본뜻이 무엇인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되었고, 새로운 감사와 고백과 결단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역설적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갈릴리 호수에 광풍이 불자 두려움에 싸인 제자들이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시며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안타까워하시며 무서운 광풍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덮친 광풍을 잠잠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시편 91편 3~4절의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우리를 악한 자의 덫에서 빼내 주시고, 심한 전염병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날개로 우리를 덮어 주시니 우리가 그 날개 아래로 피할 것입니다. 주님의 진실함이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와 갑옷입니다.”


 

 

 

 

 

 

박경수 교수
장신대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