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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 흩어지는 교회와 모이는 교회의 소중함

작성일 : 2020-06-30 12:19 수정일 : 2020-06-30 12:39

 

Ⅰ. 들어가는 말


최근 거의 모든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부득불 예배를 축소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4차 산업혁명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튜브 방송으로 온라인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무너진 가정예배가 회복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립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그동안 우리는 모이는 교회의 기능에 많이 주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공예배와 더불어 교회 안에서 모이는 일에 노력해왔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삶의 예배에 소홀해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이번 사태는 교회가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과 함께 지역사회의 약자들을 돌아보면서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것을 회복하고 더불어 공예배가 공동체로 모이지 못하고 가정에서 영상으로 대체되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가정예배가 회복되는 귀중한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번 사태가 진정되어도 성도들이 이전처럼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21일이면 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66일이 지나면 습관이 굳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짐으로 굳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생각하는 성도들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함께 모이는 공동체적인 예배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Ⅱ. 우리는 왜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며 모이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회복해야 하는가?


첫째,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공동체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 삼위일체 하나님은 공동체적으로 존재하고 계시며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이성·도덕성·영성·사회성(공동체성)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인간 또한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은 하이테크 시대에 문명의 편리함 속에서 더욱 하이터치(접촉)를 원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세계 속에 살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호회를 찾고 취미그룹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살아갈 때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나홀로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인격적인 응답으로 하나님 보좌앞에 나아가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만남, 그 임재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배 가운데 더 깊은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우리는 혼자서도 성경 보고, 말씀 듣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적 예배 속에서 성도들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를 때 주님의 임재를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공동체로 모이는 예배의 연합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솔로몬은 우리가 함께 연합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4가지의 축복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즉 영어로 표현하면 4P의 축복입니다. 첫째 Power(힘), Protection(보호), Production(생산), Prize(상급)입니다.


우리는 요즘 들어 성도들이 경조사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결혼예배와 장례예배에 성도들이 오지 못해 너무도 쓸쓸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에 안타까움이 많았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하신 말씀이 성도들의 공동체적인 예배 가운데 일어나는 축복임을 더 깊이 절감했습니다. 주일예배에 성도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할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연합과 동시에 성도들과 연합이 되어 세상의 시험과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의 한자는 가르치는 공동체적인 교회(敎會)가 되기 이전에 교제의 공동체인 교회(交會)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성도들의 영적이며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신앙이 전수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령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 속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예배가 끝나고 성도 간의 봉사와 교제를 통해 얻는 영적인 코이노니아는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성숙한 믿음의 성도로부터 자연스럽게 성숙한 신앙을 전수받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로 배우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교육, 둘째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배우는 분위기를 통해 배우는 정서적인 교육,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대상을 보고 행동의 본을 받는 모델교육입니다. 마지막 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입니다. 우리는 예배공동체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서로 닮아 가며 서로 배우는 모델교육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샬 맥루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달 매체가 바로 전달 내용이다.” 전달하는 내용보다 전달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받고 싶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가 전하는 내용을 신뢰하고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바로 예배공동체인 것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예배현장에서 만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따라 천국도 가고 더 깊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넷째, 공동체로 모이는 힘이 세질수록 사회적으로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대로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120명(행 1:15)의 성도들이 그곳에 함께 모여 전심으로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쓸 때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서도 모이기를 힘썼고 집에서도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행 2:46). 그 결과 온 백성의 칭찬을 받으며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졌습니다(행 2:47). 초대교회가 지역에서 칭찬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공동체로 함께 모이기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가 모여서 예배드릴수록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은 커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척 스윈돌 목사님은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갈멜산의 영적인 전투에 비유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도 누가 땅에 장작을 많이 쌓았느냐에 따라 화력은 달라진다.” 우리가 성전에 모여서 예배하면서 공동체의 영적인 화력을 모으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초대교회처럼 전도의 문을 힘껏 열 수 있으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겠습니까?


다섯째, 이 땅에서 드리는 우리의 공동체적인 예배는 하늘에서 이루어질 천상의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의 그림자입니다. 영화로 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의 삶에 대한 예고편입니다. 예고편이 끝나면 본편이 다가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 아침 예배당에 들어가는 것은 언젠가 하늘나라 천국에 입성하는 예행연습입니다. 계시록 7장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천상의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 7:9~10).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함께 구원의 주인공 되신 어린 양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를 드립니다. 이와 같은 천상의 예배가 오늘 지상에서 드려지는 공동체 예배를 통해 연습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을 통해서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은 이렇게 예배할 날이 올 것이다. 땅에서도 이런 예배를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Ⅲ. 나가는 말


모이는 교회로서 예배당에 공동체로 함께 모여 드리는 구심력적인 예배는 하나님 임재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한 원심력적인 삶의 예배로 흩어지는 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모이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 중심에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 가운데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흩어지는 원심력적 예배는 모이는 구심력적 예배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그간 소홀했던 가정예배가 회복되고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이 되는 흩어지는 교회 기능이 회복되어 어려울 때일수록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초대교회처럼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성도들은 온라인 예배의 익숙함에 머물지 말고, 공동체로 모여 드리는 예배를 온전히 회복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고, 어떠한 세상의 시험과 고난도 함께 이겨내며, 성도간에 신앙의 아름다운 전수와 계승이 이루어지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더 크게 발휘하는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 모두 천상 예배를 아름답게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조건회 목사 _ 예장총회 예배학교 교장, 예능교회 담임

 


※ 이 글은 많은 교회에서 온라인으로만 예배가 진행될때 한국기독공보(4월 13일)에 실린 칼럼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호응을 얻은 글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