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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 신자 되기 원합니다(찬송가 463장)

작성일 : 2020-06-29 15:52 수정일 : 2020-06-29 16:11

이 찬송의 기원은 흑인영가이다. 흑인 노예들이 예수를 믿고 싶어도 교회에 다니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들도 구원을 받고 싶었지만, 그 구원은 백인 주인들의 것이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사실에 어느 한 노예가 용기를 내어 주인님께 이렇게 간청한다.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in my heart.”
“주인님, 나도 진정으로 크리스천이 되고 싶습니다.”


여기서 ‘Lord’는 처음에는 백인 주인을 뜻했다. 그러나 이 흑인영가가 찬송가에 실리며 ‘Lord’가 하나님을 의미하게 되었고, 우리가 진심으로 크리스천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찬송을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찬송을 잘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흑인영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흑인들이 서아프리카(지금의 가나, 세네갈, 기니, 잠비아,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토고, 나이지리아, 카메룬, 가봉, 그리고 콩고와 자이레의 일부)로부터 미국에 노예로 팔려오기 시작한 것은 1526년경부터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에 거주하게 된 흑인들은 1700년경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상인들에 의해 팔려왔는데, 1450년부터 1900년까지 거래가 성사된 1,100만의 아프리카인들 가운데 30% 이상이 운송 도중 사망하고 450만~800만, 14~30세 사이의 젊은 흑인들만이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카리브해의 섬들로 왔다. 1790년 미국 인구조사에 의하면 미국 전체 400만 인구 중 흑인이 69만 7,624명이었고, 1860년 조사에 의하면 약 400만의 아프리카 노예들이 등록되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팔려온 후 차별과 학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노예들은 초창기에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흑인들은 대부분 여전히 해와 달과 같은 아프리카 고유의 신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기독교를 가혹하고도 잔인한 종교라고 여겼고, 자신들의 종교적 가치와도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노예들 사이에서 ‘하나님은 가장 잔혹한 주인’이라고 인용되기도 했다. 기독교가 전파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백인들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자유와 평등의 종교, 해방의 종교였기 때문에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그러한 사상이 심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언제나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오히려 백인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흑인들이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데 이용했다(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나 흑인들을 향한 미국 내 뜻있는 백인 선교사들의 활동과 1740~1830년까지의 미국의 1, 2차 대각성 운동 등으로 인해 복음이 흑인들에게도 열리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비록 흑인들이 백인들의 교회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고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최초의 흑인 교회는 1750~1777년 사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실버 블러프(Silver Bluff)에 설립된 침례교회이다. 노예로 팔려온 지 200년이 넘어서이다.


백인 목회자들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라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천국의 소망과 인내를 가르침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이로써 노예들에게 기독교는 급속히 전파되었고, 이와 더불어 자연스레 음악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어에 서툴렀던 노예들은 노예가 되기 전 서아프리카에서 부르며 계승해 온 민속 음악의 선율에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흑인영가의 시작이다. 이것은 노예로서 그들이 만들어낸 ‘공동체의 음악’이었는데, 가혹한 노예 생활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었다. 노예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은 위법이었기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던 그들에게 성경 대신 노래가 복음 전파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이 아프리카-미국(African-America) 민속음악의 시작이었으며 이 음악은 훗날 가스펠과 결부된다.


한편,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하고, 이와 맞물려 1775년에서 1783년 사이 미 연합국과 영국 사이에 미국 독립전쟁이 벌어진다.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미 연합군은 1776년 조지 워싱턴이 흑인들을 병력으로 사용하고자 흑인들에게 전쟁참여 조건으로 전쟁 후 자유를 약속했다. 전쟁승리 후 1808년 유럽으로부터의 노예 수입금지 법안이 발의되었는데, 산업화가 많이 이루어진 북쪽 주(州)들은 흑인 수입금지 법안을 찬성했지만, 농업을 주로 하는 남쪽 주들은 일손의 절대적 부족으로 반대했다. 이는 남과 북의 대립으로 이어졌고, 1860년 링컨 대통령 당선 후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865년 북군의 승리로 남북전쟁이 끝나고, 링컨은 노예금지법을 발의해 마침내 미국 내의 모든 노예가 자유로워진다. 그 후 대학과 같은 흑인 교육기관이 설립되기도 하고, 북부지방의 자유로워진 노예들의 일부는 뉴욕에서 극장(African Grove Theatre)을 설립해 흑인음악, 바이올린, 피아노 등을 연주하며 생활했다. 여기서 연주되던 음악이 노예 생활 때 불렀던 흑인영가, 블루스, 래그타임 등 재즈의 전신이 된 여러 장르인데, 흑인영가 풍의 현대 성가에 크게 영향을 미쳐 현재 교회 찬양대에서도 즐겨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흑인영가의 구체적인 특징에 관하여는 9월호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박신화 장로
마포·영등포교구
갈보리찬양대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