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문화/교제

HOME > 문화/교제

「202007」 외할머니를 하나님께 보내드리며

작성일 : 2020-06-29 14:32 수정일 : 2020-06-29 14:52

 

황금연휴가 시작된 지난 4월 30일, 모든 것을 예비하신듯 가장 좋은 날 외할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최근 3년 정도 많이 편찮으셨던 할머니는 치매까지 걸리셔서 많은 일을 잊어버리셔도 하나님만은 기억하고 우리에게도 불평불만 없는 예쁜 말만 하셨다.


“예쁜 사람 왔구나, 내가 누워있어서 미안하다” “음식이 없어서 어떡하니, 고맙다 이렇게 와줘서”


처음으로 상복을 입고 장례식을 치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례비용을 보며 돈 없으면 장례도 치르기 힘들겠구나. 끊임없이 들어오는 화환과 방문해 주시는 조문객을 보며 그저 베풀기를 좋아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정말 자녀들을 잘 키우셨구나. 할머니가 하늘에서 4남매를 보며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겠구나. 3일 내내 각자의 엄마 아빠 옆에서 같이 밤 지새우며 할머니 곁을 지키는 나를 포함한 손자손녀 6명을 보며 우리가 꽤나 많이 컸구나….


“남에게 후하라, 후하되 아껴 써라, 아껴 쓰되 인색하지 말아라.” 할머니가 엄마에게 늘 하신 말씀이다. 많은 사람에게 후하게 베풀고 나누기를 좋아하셨던 우리 외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1935년 함경남도 흥남시에서 맏딸로 태어난 할머니는 총명함과 출중한 외모를 갖추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끌어가신 할머니의 삶은 편안함과 안락함이 아닌 십자가의 희생, 보혈, 헌신의 삶이었다. 16살의 할머니는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미신을 섬기고 굿을 해왔던 집안에서 할머니가 예수님을 만난 후 제일 먼저 한일은 당신의 어머니(나의 외증조할머니)가 위급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당시 집안의 귀신 단지와 부적을 전부 불태운 일이었다. 이 담대함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냉면집을 하시던 외증조할머니가 교회에 나가시면서 제일 처음 한 일은 그달의 수입을 단 한 푼도 떼지 않고 전부 다 헌금하신 일이라고 한다.


할머니가 중학교 2학년 때 민족 최대의 아픔과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났다. 고향을 뒤로한 채 거제도를 거쳐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시작하신 할머니는 자신의 학업을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와 떡 장사를 하며 어린 동생들을 자식처럼 돌보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쓰셨다. 힘든 피난생활에서도 교회 성가대 봉사를 하며 찬양으로 몸과 마음의 고달픔을 달래셨다. 삶의 터전을 서울로 옮기고 지금의 오장동 함흥 냉면집 자리에서 냉면 장사를 시작하신 당신의 어머니를 도와 새벽에 일어나 삯국수를 누르며 온종일 말없이 일만 하신 할머니, 그 모습에 반해 외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결혼하셨다고 한다.


14년간 중풍 환자로 계시던 시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셨던 할머니의 기도 결실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셨다. 7번이나 반복된 외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졌지만, 약속한 날에는 그 금액에 못 미치더라도 꼬박꼬박 돈을 갚아 나중에는 돈을 꾸어준 분들이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와 일수계 일을 하면서 할머니는 언제나 기도하셨다고 한다. “하나님! 제가 이 가정을 위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세요.”


“우리 자녀들은 돈을 좇는 자들이 되지 말고 일을 좇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던 할머니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본을 보이는 삶을 사셨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병명을 알 수 없었던 불치병(지금의 루게릭병으로 추측된다)으로 3년간 투병하시는 중에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할머니의 인생은 누가 봐도 결코 연약한 여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끝내 가정을 아름답게 지켜내고 자녀들에게 ‘삶이 곧 믿음’이라는 유산을 남기셨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힘과 능력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온 것이며 진정 아름다운 인생은 자신을 위한 삶보다는 남을 위해 헌신하는 예수님을 닮은 삶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할머니는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복의 근원이며 축복의 통로였다.


정신없이 쏜살같게 지나간 3일, 역경의 세월을 견디어 오신 할머니 세대의 고생과 수고와 헌신으로 오늘날의 우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시대의 암울함과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와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며 은공을 잊을 때가 많지만, 삶이 믿음이며 믿음이 곧 삶인 할머니의 헌신적이셨던 일생을 보며 자란 엄마의 자식으로서 나 또한 삶 자체가 믿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입관할 때 엄마가 할머니의 얼굴을 만지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 “엄마, 안녕히 가세요”, 나는 이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은 참 평안해 보이고 사랑스러우셨다. 가족 누군가에겐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할머니, 누군가에겐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할머니, 누군가 나에게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외할머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위대한 삶을 사신 할머니, 이제 하나님 곁 하늘나라 천국에서 아프지 말고 평안하게 사세요. 감사하고 사랑해요.

 

 

 

 

 

 

김민지 성도
종로·성북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