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말씀/칼럼

HOME > 말씀/칼럼

「202006」 위기의 시대, 성령을 기억하십시오

작성일 : 2020-06-02 14:51 수정일 : 2020-07-31 08:57

 

기독교 신앙의 다양한 전통에 따른 성령론에 대한 강조점은 차이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순절 교단은 은사를 동반한 신비체험을 신앙의 중심에 두곤 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가 속한 장로교는 구원 사역에 있어 중생의 주체인 성령(고전 12:3, 엡 1:13, 빌 1:19, 살후 2:13, 딛 3:5)에 대해 강조합니다.


이는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다루는 성령론에 관련한 큰 주제인 창조와 생명, 성경과 본질 그리고 권위에 관련한 내용의 심화와 확장을 ‘믿음’이라는 목회적 언어를 중심으로 피력한 영향력 때문에 그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자칫하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교리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열광적이고 무속적인 성향을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이 이야기하고 있는 성령에 의해 얻어지는 믿음은 교리적 또는 은사주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넘어서는 신앙생활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내용(요 14:16~18)은 이 시간 이곳에 함께하시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보혜사’에 대한 이해와 체험 그리고 확신입니다. 그러하기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아는 이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큰 능력과 열매를 얻고 누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기쁨
먼저,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이것입니다. 주의 성령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동여매는 띠(bond)로써 중생의 주체적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구속의 역사는 암울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성령에 의해 여전히 진행(요 16:8~11)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 하나님 사역의 근간입니다.


우리 신앙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신비를 바르고 건강하게 경험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명확하고 분명한 믿음의 내용과 그에 따르는 신앙 고백입니다. 더불어 올바른 믿음에서 시작된 신비가 망상이 아니라는 증거는 주의 성령의 초월적 현존이 현실을 이겨내는 힘, 세속에서 거룩할 수 있는 능력, 무엇보다 삶의 모든 문제에 승리할 수 있는 열매(갈 6:8)로 드러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 땅을 사는 성도들이 비록 두렵고 어렵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구원의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고 그 열매를 누릴 수 있는 이 땅의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 우리가 성령에 대해 가지는 첫 믿음입니다.

 


생명의 삶에 대한 약속
다음으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생명력 있는 삶의 자리에서 확인됩니다. 최근 전염병의 공포는 백신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해결책이 없고, 감염되면 죽을 수 있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한계 앞에서 우리 믿음은 실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를 영생으로 이끌어 갈 것을 진심으로 믿는가? 내가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가운데 받았던 감격과 말씀의 은혜가 진정 미쁘신 하나님의 약속인가?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이 여전히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


성령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성령께서 수없이 역사하셨지만 가장 명확하고 부인할 수 없는 그분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마 1:18)와 십자가 죽음 이후에 부활(롬 8:11)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생명을 주관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체험이 있다면 우리는 앞에서 질문한, 죽음을 포함한 삶의 난제에 대해 명확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에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무게, 사라지지 않는 고통에 대한 공포, 절망 등이 있더라도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전염병에 그리스도인은 감염되지 않는다는 미신이나 나 혼자만 불로장생하려는 광신, 혹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맹신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오히려 ‘나의 삶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주의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그분의 보호 속에 내가 있다!’라는 확신은 이집트 땅에서 유월절의 신비를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삶의 자리에서 발견되는 생명의 삶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함께하는 거룩한 교회를 통한 믿음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세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냅니다. 지난 4월 28일 뉴욕타임스 사설에서 현 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Antonio Guterres)는 현재 상황을 병든 사람들과 지구를 구해야 할 기회라고 피력했습니다. 더불어 거시적 해결책으로 향후 모든 국가는 환경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과 상호 협력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는 조금이라도 보다 나은 삶의 가치와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아주 원론적인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 듯,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은 가장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역사에 있어 인류는 한계 상황에 대처해 공존 또는 희망과 같은 이상적 해결책을 말해왔지만, 그 응답은 언제나 현실에 충실한 인간의 욕망이었고 자기 사랑의 죄 된 성향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미 고대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본심과 실체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며 죄의 심판을 피해 흩어짐을 면하려는, 주체성으로 포장된 죄 된 본성(창 11:4)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이기적 본성 충족을 따라 모이거나 협력합니다.


이에 반해서 하나님께서 반역한 죄인들을 다른 목적과 이유로 모이게 하시고 UN 사무총장이 요청하는 치유와 회복, 협력과 공존과 같이 인류가 결코 스스로 해낼 수 없는 초월적 이상을 실현하셨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주의 성령이 임재하셨던 교회의 태동 사건(행2:1~47)이었습니다. 그곳은 생존을 위한 이기심으로 인해 차이가 혐오와 차별로 발현되는 욕망의 도가니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초월해서 한마음과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자리였습니다.


주의 성령은 그렇게 우리의 개인적인 이기심을 초월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일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완성에 관련한 믿음입니다.

 


주님 주신 약속의 보증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렵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와 시간은 과거에 늘 있었습니다. 그때 거짓된 자들은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큰일만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이들은 인간의 큰일에 열광했고 그로 인해 곤욕을 치렀습니다. 유다가 멸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45:5)


현실의 실제 사정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택하신 백성과 사랑하는 자녀들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겠다는 미쁘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보증(고후 5:5, 엡 1:14)으로 주의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함께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구원의 기쁨, 생명의 삶에 대한 약속 그리고 함께하는 거룩한 교회를 통한 믿음을 굳건히 하는 가운데 위기의 시대에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능력의 바이러스를 세상 가운데 전염시키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강승훈 목사
강북・도봉교구
상담부

 








 
#성령강림주일 #구원의기쁨 #생명의삶 #거룩한교회 #약속의보증 #『기독교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