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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 머리에 붕대 감고 세상을 ‘앓던’ 조만식 선생

작성일 : 2020-06-02 14:18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문득 고당 조만식(1882~1950) 생각이 났다. 며칠 전 모교인 숭실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보고 온 고당의 사진 표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당을 애모한 어느 시인은 그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세상을 앓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고당의 세상은 곧 나라였다. 서울에서 고당의 사모님께들은 얘기가 떠오른다. 김일성은 정권을 차지했으나 북한 국민의 정신적 지지는 받지 못했다. 반대로 고당의 뜻은 모두가 따르는 실정이었다. 그렇다고 고당을 제거할 수는 없으니까 평양 도심에 있는 고려호텔에 그를 연금시켰다. 외출을 금지하고 면회조차 가로막았다. 한 달에 두 차례쯤 한 시간씩 사모님에게만 면회를 허락하곤 했다.


한 번은 면회 온 아내에게 “다음번 면회가 마지막이 될 테니까, 각오하고 한 번만 더 오라”고 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묻는 아내에게 고당은 “세상이 계속 변하고 있는데 언제나 지금 같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마지막 면회하러 갔을 때였다. 고당은 근엄한 자세로 “나는 여기서 인생을 마무리하게 될 것 같으니까, 아들을 데리고 빨리 38선을 넘어가라”고 했다. “자유가 없는 이 땅에 남아 있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라면서 그는 서랍에서 커다란 흰 봉투를 꺼내 주었다. 아내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가서 보면 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봉투를 열어 보았더니 머리카락이었다. 당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넣은 것이다.아내는 놀라기는 했으나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후일에 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장례를 치러야 하겠고, 빈 관으로 장례 절차를 밟을 수는 없으니까 갖고 가라’는 유물이었다. 사모님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남편이 ‘서울에 가더라도 많이 힘들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나를 대신해서 고생을 참아달라’는 당부를 남겼다”라고 했다.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키기 얼마 전에 기독교연맹의 김창문 목사 명의로 대한민국에 제안해왔다. 조만식을 대한민국에 보내줄 테니까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공산당 책임자 이주하, 김삼룡과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그 뜻은 성사되지 못했다. 북측의 간책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의 계획대로 6·25전쟁이 폭발했고 고당은 같은 해에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고당의 영결식도 치렀다.


고당은 나의 중학교 선배이기도 했으나 우리 모두의 지도자이면서 스승이었다. 자기를 믿고 따르는 많은 국민을 북에 남겨두고 탈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고당은 20대가 되면서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조국을 위해 산 선각자였다.


스스로 질문해본다.


우리는 누구를 더 사랑하는가.


국가와 민족인가, 아니면 정권인가.


고당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김형석 명예교수_ 연세대 철학과 사진제공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 이 글은 조선일보 2019년 5월 4일자 칼럼으로, 조선일보와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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