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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 6월, 지금 우리를 생각한다

작성일 : 2020-06-02 13:30 수정일 : 2020-06-02 13:44

 

애국선열들이 남겨주신 교훈
6월이 오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순국하셨던 분들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진다.


일제 치하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의 무대 용정에 가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애국지사들이 세운 탄식비가 서 있다. “사나이 이 한 목숨 나라를 위해 바치고자 하나 바칠 조국이 없구나!” 이 비장한 비문을 읽는 순간 가슴이 절로 미어짐을 느낀다.


한평생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서 헌신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는 “사람은 집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나라를 잃고서는 살 수가 없다!”고 역설했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가난해도 살 수 있고, 머슴으로도 살 수 있지만, 나라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류관순 열사는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인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라며 순국했고, 그 부친과 오빠도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 아래 순국했다.


순국열사들이 이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싸울 수 있었던 힘은 하나같이 굳은 신앙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안중근, 김구, 이승만, 류관순 열사 모두 하나님을 굳게 믿었던 믿음의 선진들이었다.


순국열사들의 고귀한 희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주고 있다. ‘나라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라, 일신의 영달을 위한 생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권을 잃은 민족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안겨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들은 6백만 명이나 학살되면서도 국제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연맹이 나치 정부에 압박을 가하려 해도 내정간섭이라며 일축했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었다. 당시 유태인들은 유럽 곳곳에서 특유의 우수한 능력으로 대부분 풍요를 누리고 살았지만,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나치의 학살 쓰나미를 피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2,700만 명의 쿠르드족 또한 국가를 이루지 못한 탓에 소수민족으로서 갖은 핍박과 고난을 겪고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일제 치하를 생각하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는 일제 만행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뜻있는 민족지사들이 가산을 몽땅 털어 독립군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했던 일을 생각해본다. 많은 애국지사는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 개인의 영달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절실히 느끼고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바쳐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고귀한 희생을 불사했다. 그만큼 국권은 소중한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으면 이처럼 나라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순국열사,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우국충정을 주체할 수 없다. 오늘의 빛나는 대한민국은 그분들의 무수한 희생을 바탕으로 일어선 것이다. 그분들은 하나뿐인 생명을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아낌없이 던져주신 것이다.

 


폐허 속에서 국가발전을 이룩한 우리의 선대들
돌이켜보면, 1950년 6월 25일 국가체제가 미처 정비되지 못한 상태였던 신생국가 대한민국은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받아 전 국토가 폐허로 변했다. 그러나 전후 한국은 불과 70여 년 만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눈부신 성장국가를 건설했다. 그것은 혹독하게 힘들었던 시절을 오로지 ‘국가재건’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단결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매진한 결과였다.


국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정치, 외교, 사회, 문화, 군사, 산업·과학기술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져, 오늘날 한국은 국제사회가 부러워하는 세계 10대 경제교역국, 6대 국방력, 여섯 번째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국가)의 자유민주주의국가 위업을 달성했다. 실로 감개무량하지 않은가!


자원 빈국인 데다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리의 선대들은 순전히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러한 국가발전을 이룩해낸 것이다. 수출 외에는 달리 길이 없음을 인식한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구미, 울산, 창원, 포항, 인천, 구로, 대덕단지 등 수출자유특구와 중화학공단을 건설하면서 국내기업들의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전략 차원의 세제혜택과 국제시장 개척에 노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전자부품, 80년대 조선, 90년대 자동차 및 가전제품, 2000년대 모바일폰을 포함한 초고속 정보통신기술 제품들이 세계시장을 점유하면서 오늘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러한 성공의 열쇠는 바로 한·미동맹이었다. 중국 및 소련과 동맹을 맺었던 북한의 파탄 난 경제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 무상원조를 시작으로 국가 재건을 파격적으로 지원했고, 무역 최혜국 대우를 장기간 보장함으로써 한국 상품이 미국과 국제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은 이를 발판 삼아 세계시장을 힘차게 개척해낼 수 있었다. 국제무대에서 삼성과 LG, SK 같은 대한민국 브랜드가 시장을 석권하며 진가를 발휘하기까지에는 지난 50년 이상 끈질기게 이어온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게다가 오늘날 한류문화는 국제무대를 압도하고 있다. 영화계의 최고봉인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빌보드차트 톱을 달성한 방탄소년단(BTS)과 여러 남녀 뮤직그룹들의 글로벌 공연들, 그리고 축구, 야구, 빙상, 골프, 양궁 등 스포츠에서의 뛰어난 기량과, 바둑, e-스포츠에서의 압도적인 승리 등은 가히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며 대한민국의 국가위상을 한층 더 격상시켰다.


방탄소년단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공연 때 6만 명 이상의 관중들이 함께 큰 소리로 불러대는 한국어 ‘떼창’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진풍경이었다. 일제의 핍박으로 암울했던 시절, 백범이 주장했던 자랑스러운 문화대국 대한민국이 실현된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
이러한 국가위업을 달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집중된 노력이 필요하다. 1990년대 중후반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필자는 백화점 할인코너에 먼지 쌓인 채 싸구려 취급받고 있던 한국산 가전제품들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워싱턴에서 맹활약하는 안보전문가 오공단 박사의 증언은 실로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백화점에 가면 한국산 가전제품들이 제일 비싼 가격대에 진열돼있고 할인도 일절 없어서 무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이다. 전 세계 렌터카 회사들이 운행하는 차량 중에서는 한국산 차량이 단연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연마해온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가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순국열사, 애국지사들이 목숨으로 씨 뿌려 닦아놓은 터전 위에, 50년 이상 국가산업 전 분야에서 우리의 산업역군들이 불철주야 물불 가리지 않고 피땀으로 희생하며 이룩해낸 위업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책무가 있다. ‘국가안보는 개인의 생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애국선열들이 남겨주신 교훈을 오늘에 되새겨 보다 수준 높고 경쟁력 있는 눈부신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처소에서 맡겨진 책무 완수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겠다. 또한 후진들이 이를 지속적으로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훈육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겠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홍성표 안수집사
관악·동작·금천교구
선교부 군경선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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