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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 가족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작성일 : 2020-05-08 09:03 수정일 : 2020-05-22 15:56

 

“그런데 왜 성경공부조를 가족이라고 불러요?”


그 질문이 시작이었다. 불과 3년 전, 누군가 지나가듯이 툭 던진 질문.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진짜 네 가족이 될 거라서 그래.”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을 던졌다. 교회를 처음 다녀본다던 그 사람은 잠시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다 보다가 이내 감흥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나쳐갔다.


그런 문제들이 있다. 의도와 내용, 함의까지 명확하고 심지어 적확한 대답이 어떤 것인지도 머릿속으로는 꿰뚫고 있으면서도 정작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


어려서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고, 잠시 방황했다가 나름의 인생 풍파 속에서 막연하게나마 하나님을 느끼고 섬기기 시작한 아주 평범한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생활 중 생기는 질문들에 완벽한 대답을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 의존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싶었다. 왜 우리는 교회의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를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답이 아닌 온전한 나만의 고백을 위해 나는 스스로 이 답을 찾아내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왜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를까? 나는 무엇 때문에 교회라는 공동체에 들어와 사람들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그들을 지키고 싶은 것일까?


먼저 교회라는 공동체에 처음으로 애착이 생겼던 날을 돌아봤다. 찬양대. 서로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닌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 처음에는 그 음악이 좋았고, 그다음으로 내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좋아졌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그한 사람 한 사람이 좋아졌다.


작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큰 공동체로 나아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찬양대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대학부로 번졌고, 나는 어느새 대 학부에서 내 이름을 건 가족을 만나고 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은혜를 나누고, 누리지 못한 이에게는 누릴 기회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왜 그랬냐고 한다면 의무감도 있을 것이고,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삶으로부터 생긴 죄책감 때문도 있을 것이고, 그냥 사람들이 좋았다는 것도 이유가 되리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스쳐 간 사람들, 아직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 누군가는 인생이 고달팠고 누군가는 하루하루 행복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힘든 삶을 교회에서 위로받으며 견뎌내고 있었다. 나는 마치 농장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넘치도록 누리는 사람의 행복을 따다가 혼자 시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붙잡아두려 했다.


‘가장’. 그래, 아직 결혼도 출산도 겪어보지 못한 그때의 내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는 그 두 글자였다. 나는 가장이 된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주님 품을 떠나서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보려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던지고, 모범생처럼 하나님 꼭 붙들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주되 교만하지 않도록 타이르고, 지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품으면서, 명절연휴 끝 손자들을 돌려보내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다음 주에도 꼭 보자는 약속을 받아내는 가장.


그리고 그 생각에 이르러서야 내가 어떻게든 찾아내려 했던 근본적인 대답은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를 키우는 데에 정답이 어디 있겠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에 정답이 어디 있어? ‘왜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르냐’라는 질문에 가장 정확한 대답을 찾으려는 것은 요컨대 ‘아이는 어떻게 생기냐’는 네 살배기의 질문에 가장 적절한 정답을 찾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게 된 계기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찬양이었고 다른 누군가는 힘든 순간 붙들어준 말씀일 수도, 한 번의 설교였을 수도, 힘든 순간 붙잡아준 한 번의 손짓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농구를 주제로 한 유명한 만화의 한 장면처럼, 교회에 한번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가벼운 제안 덕분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시작이 아니라 끝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평생 집에 머무르는 꿈을, 누군가는 독립하는 꿈을 꾸더라도 결국 가족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지금 제각각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천국에 본적을 두고 있는 한 페이지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적힌 몇 글자 이름들이다.


“왜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라고 불러요?”


만약 같은 질문을 지금 받는다면 나는 머리를 굴려서 어떻게든 재치를 짜내는 대신 편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어?”

 

 

 

 

 

 

우대권 성도
홍보출판부 편집위원
대학부찬양대 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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