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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붙잡으시던 목사님

작성일 : 2020-04-03 09:26 수정일 : 2020-04-03 09:49

 

한경직 목사님은 1902년 12월 29일에 평남 평원에서 태어나셨고 2000년 4월 19일에 향년 97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올해 4월은 목사님의 20주기가 됩니다. 고인을 추모할 때 그분이 목회자로, 설교자로, 교육자로 세계선교와 기독교유관사업의 책임자 등으로 국내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제한된 지면에 모두 기재하기 불가능해, 여기에서는 그분의 온유와 겸손에 대해서 비록 빙산의 일각이지만, 옮겨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41년 동안 5개 교회에서의 목회여정 중에 1978년부터 10년간은 영락교회에서 부목사와 수석 부목사로 섬겼습니다. 이 기간에 한경직 목사님과 맺은 인연은 크나큰 축복과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신촌교회에서 22년간 시무하고 정년 은퇴한 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
난날 10년간 섬겼던 영락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고 갈 때마다 한 목사님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이 스크린처럼 새삼스럽게 떠오르곤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고 진실하신 분
신촌교회에서 시무할 때도 매년 새해를 맞아서는 남한산성 목사님의 거처로 세배하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그토록 기뻐하시고 반가워해 주셨습니다. 목회 덕담과 더불어 저와 가족을 위해서 축복 기도해 주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년 목사님의 축복 기도가 끝나고 일어서서 나오려고 하면 저의 손을 꼭 잡아 끌어당기면서 “이왕 올라왔으니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고 내려가세요” 말씀하십니다. 제가 당황해하면 “나도 목사님들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야. 어서 기도해줘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신 그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가 중구교구를 맡았을 때 일입니다. 주보에서 대심방 예고를 보신 목사님께서 심방일에 맞추어서 기념관으로 내려오셔서 대심방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당시 사무장 최학송 장로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심방 대원들과 함께 들어섰을 때 목사님은 검은색 정장을 정갈하게 입으시고 이발까지 하시고 정성을 다해 간절한 태도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어찌 목사님 앞에서 설교할 수있었겠습니까? 남한산성 세배 방문 때 기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그때도 목사님께서는 “나도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고 기도가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자, 어서 앉으셔서 예배드립시다”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어린아이같이 너무나 순진하고 진지하신 목사님 앞에서 코끝이 시큰했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반말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 중의 또 하나는 누구와의 일상대화 속에서든 결코 하대하거나 반말을 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막내아들 같은 저에게나 관리집사들에게나 목사님의 운전기사나 교회 경비 집사들에게나 미화원으로 섬기는 여집사들에게나 교회 직원들에게나 언제나 존댓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언젠가 목사님께서 남한산성에서 전날 내려오셔서 기념관 숙소에서 1박 하시고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중이었는데, 저의 아내 유순화가 목사님 5미터쯤 뒤에 떨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먼저 봉사관 출입문을 열고 손잡이를 잡고 기다리면서 “사모님, 먼저 들어가세요” 하셨습니다. 저의 아내가 당황해 머뭇거리니까 “사모님, 괜찮아요. 어서 먼저 들어가세요”라고 반복하셔서 진짜 먼저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내는 한경직 목사님 하면 그때의 온유함과 겸손함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저의 아내가 그림을 좀 그립니다. 전시회도 여러 번 가졌습니다. 화폭에 낙관을 찍을 때 쓰는 아내 호가 온유(溫柔)인 것도 목사님의 온유와 겸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명감과 충성, 그리고 갖추어야 할 덕목들
제가 영락교회를 사임하고 신촌교회에 부임한 후 위임예식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께서 친히 오셔서 설교하셨습니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4:1~5이었고 제목은 ‘사명감과 충성’이었습니다. 목사는 모름지기 성실하고 철저한 사명감과 그 사명감을 감당하기 위해서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으며, 부디 맡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일에 충성하고 끝까지 충성하라고 당부하셨을 뿐만 아니라 온유와 겸손과 진실을 강조하셨습니다. 목사의 설교는 강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일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목회자연수회에서 많은 목사를 대상으로 한 특강 시간에 “목사는 목사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고 참된 교인이 되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는 세 가지 시험 즉 물질(money), 이성(sex), 명예(reputation)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한번은 한국 교계 중진 목사들께서 목사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여러 가지 문제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을 때, 방문했던 목사님들께서 후진들에게 도움 말씀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이렇게 혼탁하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 것은 저 자신을 포함해 목사들이 예수를 잘못 믿어서(?) 야기된 것은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종종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목사님께서는 어린아이같이 순진하시고 온유 겸손한 분이지만 투철한 애국애족 반공주의자였습니다. 모름지기 교회는 국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의 설교 중에 비록 당시가 군사독재정권이라고 해도 독재자나 독재정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교회는 마땅히 오직 국가가 바로 서고 복음으로 남과 북이 통일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무수히 들었습니다.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국민투표에 의한 선거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 인사차 목사님을 방문했을 때 그 자리에 동석했는데 정치, 경제, 안보 등 당면한 여러 현안을 놓고 대화하던 중 온유와 겸손으로 통치할 것을 당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기도드리실 때 시편 127:1과 아모스 5:24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나라를 위해 구구절절 간절히 기도드리셨던 쟁쟁한 목사님의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나는 신사참배한 죄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템플턴상(The Templeton Prize)을 수상하셨습니다. 상금은 노벨상보다 더 많은 20억 원의 거금이었습니다. 그 거액의 상금을 목사님께서는 한 푼도 개인의 소유로 갖지 않으시고 곧바로 통일을 대비해 폐허화된 북한의 교회 재건을 위한 기금으로 전액 헌금하셨습니다. 수상식 참석 후 귀국해 63빌딩 컨벤션홀에서 국내외 여러 저명인사와 언론사 기자들과 성도들이 회집하여 목사님의 템플턴상 수상을 축하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모든 축하순서의 말미에 목사님께서 수상소감과 인사의 말씀을 드릴 때 “우선 저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는 신사참배한 사람입니다. 죄를 많이 지어서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목사님이 얼마나 진실하신 분인가 하는 것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4월이면 목사님께서 가신 지 벌써 20주년이 됩니다만 그 진지하신 모습과 솔직하신 회개의 고백, 무엇보다도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은 저의 뇌리에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고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그분의 온유와 겸손은 인위적이거나 쇼(show)가 아니라 DNA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오창학 목사
신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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