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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 사순절을 위한 묵상

작성일 : 2020-03-04 00:12 수정일 : 2020-03-18 17:53

마태복음 26장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기도 이후 로마군사들에게 붙잡힌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십자가 고난을 받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처절하게 표현한 영화 ‘패션 오브 크리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슬퍼하며 절망하며 기도하신 것이 좀 더 잘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실 때 세 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특별히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 부탁하신 후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영락기도원에 걸린 성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담고 있다.

예수님은 기도가 끝나면 로마 군사들에게 체포되고 그 이후로 겪을 십자가의 길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전쟁영화에서 적군의 공격이 곧 임하게 될 때 공습경보가 울리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공포가 엄습하는 순간이지요. 예수님은 그러한 공포의 엄습 가운데 땀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놓인 시험을 이겨내시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처럼 예수님께서 몸부림치는 시간에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본적인 복음 사역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부활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이루실 때 세부적인 부분에서의 수정과 보완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난의 정도, 채찍 맞음, 통증의 강도 등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변화의 옵션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옵션 중에서 충분히 유리한 것들만을 선택하시기에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체포되신 일, 끌려가신 일, 심문을 받으신 일, 십자가를 짊어진 영락기도원에 걸린 성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담고 있다. 채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일, 그리고 최후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모든 일을 충분히 본인이 원하는 방법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의 생각과 원함의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 안에서 모든 것들을 깨끗이 내려놓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뜻과 원하심 가운데 예수님 자신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 우리는 예수님이니까 쉽게 할 수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신 예수님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당할 고난을 알고 계셨기에 쉽지 않은 ‘맡김’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신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온전히 인도함을 받고자 하셨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얘기를 생각해봅시다. 개미가 한여름에 열심히 준비함으로써 겨울에 찾아오게 될 그 추위와 배고픔과 그 모든 어려움을 대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기도가 바로 그와 같은 준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던 이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위기의 순간에 무언가 하려고도 했지만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더 많이 깨어서 준비해야 할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들이 아니었을까요? 제자들이 더 많이 깨어 있고, 준비되어 있었어야 지금의 이러한 시험과 환란들을 어렵더라도 견딜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지 않고는 시험과 환란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시험과 환란이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시간에 이미 깨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문제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기도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처럼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친밀해지도록 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나에게 별다른 일이 생겼을 때만 하는 기도는 그저 빚진 자의 기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의 분량을 쌓아 놓는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됩니다. 그 어떤 일이라도 우리가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는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시험과 환란과 유혹 가운데 계실 때 언제나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충실하심으로 흔들림 없는 승리자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품으신 마음의 중심을 본받아야

사순절 기간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붙잡힘과 수난을 항상 묵상하게 됩니다. 때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 과소평가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니까 우리와 달리 쉬우셨을 거야’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신(神)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모든 일은 오직 신적인 도움에 의한 행동이다’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있었던 그 마음의 중심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짐으로써 우리도 역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적이고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라 여름에 개미들이 애쓰고 힘을 쏟아 냈을 때 겨울의 환란을 이길 수 있듯이, 우리가 갑자기 성령의 불 받아서 기적적으로 그 어떤 일들을 해결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정직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꾸준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시간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서려고 노력할 때 환란과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시간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 지향적인 믿음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관계는 절대로 한 번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충분한 만남도 필요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없을 때도 더욱 깨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 견고하게 함으로써, 앞으로 그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나에게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서 성취되는 기쁨의 일임을 깨닫고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로 거듭나는 절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황재영 목사
영락기도원